순환경제연구통신

제201028호

2010년 9월 17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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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란 무엇인가?

이른바 진보 인사, 진보 세력에게 공통적인 진보성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진보적이라는 것은 시간을 남보다 앞서서 산다는 뜻이다. 사업을 하여 성공을 하려는 사람은 남들보다 적당히 앞서지 않으면 안 된다. 남들이 이미 다 알거나 익숙해진 것을 나중에야 알아서는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하는 남들의 흥미를 끌 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크게 성공하는 사람은 생각이 유연하고 새로운 환경, 변화된 조건을 빨리 받아들여 소화하는 사람이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진보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진보는 개인이나 문화의 특성일 뿐이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과거에 있었던 것과 현존하는 것에 대한 판단과 정리가 빨라 적응을 잘 할 수 있는 반면에 과거의 것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은 하지 못한다. 쓰레기에 속하는 옛 것, 옛 질서에서 그냥 버릴 수 없는 것들을 세심하게 수습해 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판단이 느리고 새로운 것을 경계하고 새로운 상황에 대한 적응이 늦다. 부르주아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에 관한 학문을 하는 사람은 보수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교육과 설득을 통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비교적 쉽게 믿는다. 그래서 사람을 가르치고 계도하고 변화시키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냉철하여 그런 헛수고를 하는 데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런 일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고 누구를 설득시키려고 하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계산이 빨라서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거나 성과에 비해 힘이 많이 드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 자녀를 좋게 인도해야 하는 부모나 교사로서는 부적격일 수도 있다. 이에 반해 보수적인 사람들은 사람에게 잘 속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희망을 둔다.

대체적으로 보면 진보적인 사람들이 야박하기는 하지만 한참 후에 이들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포함해서 모든 일들은 웬만해서는 좋은 쪽으로 발달해가기 보다는 썩어가고 일그러져 가고 망해갈 가능성이 높으므로 아주 질이 높은 사람이나 획기적인 내용이 있는 사업이 아니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진보적인 사람은 종교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적인 사람은 교육자, 종교인, 정치인, 법조인이 되는 데 사실상 부적합하며, 사업가, 선동가, 카피라이터, 예술가가 되는 데는 비교적 적합하다.

정치적으로 볼 때 내가 분류하는 진보적인 사람의 경우에는 허황된 꿈을 꾸지 않는다. 국민이 더 민주적이 되고 더 건강하고 바람직한 삶을 사는 쪽으로 바뀌게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시대에 앞서서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 하면서 남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보는 정치인의 태도는 아니다.

순환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가? 과거의 무수하게 쌓인 유산들을 정리하고 다시 살펴보느라고 시간을 들이지 않고, 사람을 설득하고 변화시켜 내는 데 힘을 쏟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를 많이 절약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비록 실패하고 낭비가 될지라도 별로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나 쓰레기 같은 과거의 유산을 그냥 버리지 않고 끝까지 이해하고 소화하고 재생하여 오늘의 가치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이 옳은가? 나는 그 두 가지 태도가 한 사람에게 다 있을 수 있다고는 보지 않지만 사회에서는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화해서 보자면 진보적인 삶의 방식은 많은 사람과 많은 문물이 모여 있는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이고 보수적인 삶의 방식은 인내하며 자연의 것을 길러내야 하는 농촌에서의 삶의 방식이다.

이 두 가지가 다 좋다고 해서 옛 것, 옛 인연에 대한 애착심도 유지하면서 새로운 도전, 새로운 시대를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은 소화 용량의 한계에 부닥칠 것이고, 옛 것에 대한 미련도 없고 새로운 일도 흥미가 없는 사람은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에게 적합한 모습대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개과천선해서 4대강을 시멘트로 바르는 것을 그만두기를 아직도 기대하면서 기도하는 종교인들도 있어야 하고, 이미 틀렸다고 보고 앞으로 찾아올 재앙을 예견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자본이 주인인 세상을 철저히 경멸하는 사람, 등지고 떠나는 사람도 필요하다.

우리 각자는 어떤 성향의 사람이며 이 성향을 가지고서 어떻게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한가위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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