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연구통신

제201109호

2011년 4월 15일 목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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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원인과 평화의 원인

북한은 지난 4월 8일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 독점권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에 대해 남한의 통일부는 그런 일방적인 독점계약의 파기가 부당하며 그러한 독점권 무효화를 즉각 철회하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지난 2008년 남측의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 군인의 총격으로 피살된 후 2년 9개월간 금강산의 관광은 중단되었고 현 정권에서는 남북간의 긴장이 완화되고 관광이 재개될 가망이 보이지 때문에 경제적으로 극도로 궁핍한 처지에 놓인 북한 측이 현대아산에 주었던 관광사업의 독점권을 파기하고 중국 등의 관광객을 받기로 결정한 것은 주권국가인 북한의 조치로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멀쩡하게 갖추어져 있는 관광시설을 독점계약에 묶여 근 3년 동안이나 묵혀놓은 것만해도 북한으로서는 할 만큼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아산 측은 금강산 관광사업의 독점권을 얻기 위해 약 4억 7천만 불을 북측에 지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호텔을 비롯한 각종 관광시설을 조성하는 데 상당한 액수의 돈을 투자했다. 그러므로 현대 아산 측은 이번의 북측의 조치로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북측이 현대 아산에 피해를 주기 위해서 고의로 약속을 파기한 것은 아니며, 최초의 사태의 발단이야 어떻든 북측과의 대화를 회피하고 냉전정책을 펼쳐온 남한 당국이 이러한 계약파기에 큰 책임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남한의 통일부는 북측의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즉각 비난하고 그런 조치를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정황상으로 보면 북한 당국과 아무런 의사소통 관계도 갖지 못하고 대결국면만 조성해 온 남한 당국이 북측에 그런 비난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며, 이는 현대 아산 측의 권리상실로 인해 현대 아산을 중심으로 불만 여론이 형성되고 그 책임의 화살이 자신들에게 날아올 것을 미리 피하기 위한 전술로 해석된다. 즉 그러한 통일부의 입장표명은 북한을 향한 것이 아니라 현대 아산을 향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좀더 생각해 보면, 그런 얄팍한 뭉개기 전술만은 아닐 수 있다고 여겨진다. 아름다운 경치는 있었지만 별로 관광객을 받을 만한 여건이 안 되던 장소에 엄청난 시설투자를 하고 또 독점권까지 샀다는 사실은 현재의 남한 정권 당국자에게는 분명히 재산권의 침해로 여겨졌을 것이고, 그것은 중대한 범죄행위로 판단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땅에서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그것을 돈을 주고서 샀다는 것 때문이며, 그래서 돈을 낸 주인의 땅이고, 그 돈을 낸 주인은 남한의 국민이기 때문에 그 주인의 권리가 침해 당하는 것을 막아야 할 의무를 진 남한 정부는 최소한 그런 제스처를 보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좀더 쉽게 말한다면, 정치적으로는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금강산 관광지구는 남한의 영토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위험한 사태이다. 우리는 19세기의 서구 열강들의 중국 침략 시기에 자신들이 얻었던 이권이 침해되는 것을 본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의 나라들이 군사적 침략을 감행하여 더 큰 권리를 중국정부로부터 빼앗아가는 것이 거의 정해진 순서였다. 이처럼 소유권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권리가 직접적인 군사적 침략의 명분을 제공하는 것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물론 나라의 이권을 불투명한 절차를 거쳐 팔아먹는 권력층이 그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 민중은 모르는 사이에 어느 새 뒷거래가 이루어지고 주인이 뒤바뀌어 있는 것이다. 그런 매국행위가 있었으므로 강도 일본이 당당하게 우리땅을 점령하고 주인행세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어둠 속에 묻혀 있는 매수 과정은 침략자들이 즐겨 써 먹는 수법이었다.

현재의 남한 정권 담당자들은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북한 권력층의 그 누구를 돈으로 매수하는 데 성공한 것은 없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 공세를 취할 명분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며, 설사 그들이 돈을 지불한 적이 없을지라도 북한에 대해 당당하게 내 소유물을 내 놓으라고 주장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은 북녘에 있는 자신의 고향을 방문하러 갈 때 소 천 마리를 선물로 몰고 갔다. 이는 대단한 이벤트였고, 그것이 남과 북의 화해 분위기에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현대 아산의 금강산 관광 사업권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처럼 국제 관계에서 공개 리에 제공되는 선물은 냉냉한 분위기를 반전시켜 화해의 물꼬를 틀 수 있고 신뢰관계를 쌓아가는 기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는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상투적인 수법으로서 결국 침략으로 이어진다. 역대 남한의 어느 정권보다도 금권주의, 자본주의적 속성을 띤 현 정권은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고 공세를 취하는 데 이 사태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평화는 상대방 나라의 백성들에 대한 조건 없는 선물을 주고 받는 데서 오고, 침략은 다분히 이권과 자본주의적인 개발이익을 둘러싼 거래에서 나오는 속성을 지니는 것을 이번 일로 상기하게 된다.

이명박 정권이 초기에 들고 나온 북한에 대한 실리적 접근은 후자에 속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을 도우려는 세계인들의 움직임조차 훼방하는 이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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