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연구통신

제201209호

2012년 3월 16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연구소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 173번지 삼창 프라자 1522호. 전화:070-7767-5510 팩스 02-717-5510

토마스 모어와 유토피아

나는 칼 카우츠키가 저술한 《토마스 모어와 그의 유토피아》라는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했으며, 지금은 그 번역서 출판을 위해 원고를 가다듬고 있다.

토마스 모어는 지금부터 오백년 전인 16세기 초에 활동했던 영국의 지식인이자 재상으로서 그가 헨리 8세의 이혼과 재혼에 반대하다가 어떻게 희생되었는지에 대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칼 카우츠키는 유토피아의 내용과 메시지가 당시 영국의 경제 사정에서 어떻게 토마스 모어와 같은 인물에 의해 나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자신의 시대인 19세기 말의 시각에서 그 내용에 대한 해석과 비교, 비판을 하고 있다. 토마스 모어는 당시의 상인계층의 대표자로서 재무장관을 지냈으며, 양모를 확보하기 위하여 영국에서 자본가들에 의해 진행된 인클로져에 의한 농촌 변모가 가져오는 경제문제에 대하여 예리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문제의식이 유토피아에 반영되었고, 그런 맥락에서 사유재산 제도에 대한 대안으로서 공산주의가 제시된 것이다. 토마스 모어는 겨우 봉건제가 끝나가고 자본주의가 농촌을 기반으로 막 축적을 시작하던 그 시기에 이런 자본주의의 폐해와 그 근본적인 해결방안에 의식이 미쳤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 나간 천재였다.

그중에서 의외인 점은 토마스 모어가 런던 시민으로서 대도시의 문제점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했고, 이런 문제 의식이 유토피아에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도시와 농촌 간의 구분의 폐지를 향한 의식은 공산당 선언에 반영이 되어 있으며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카우츠키는 《유토피아》에서 이러한 의식의 단초를 읽어낸 것이다. 도시인들의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은 동서를 막론하고 문장가들의 글에서 읽을 수 있는 것으로서 대부분의 시의 주제가 된다. 서양에서는 이런 전원시를 목가(idyll)라고 하며, 이는 오랜 도시 생활에서 형성된 농촌의 정확한 현실에 대한 사실상의 무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카우츠키는 대도시가 세계무역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았으며, 그의 사상은 도시 문명과 농촌생활간의 분리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점철되어 있다. 오늘과 같은 세계무역이 없는 세상에서 대도시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해결책을 나름대로 공업의 농촌으로의 이전에서 찾았다. 농촌의 농업노동이 기업화되고 생산단위가 대규모화되어야 농촌에서도 정신적 자극이 주어지고 도시와 농촌 간의 대립이 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자작농 위주의 소농 경영은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논리는 농업의 규모화, 기업화를 부르짖어온 한국정부의 목소리와 비슷하여 일단은 경계심이 든다. 이런 논리가 잘못된 과도한 설비투자로 이어져서 농촌의 몰락을 가속화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로마시대와 아메리카의 노예노동에 기초한 플랜테이션이라는 대농장경영이 소농경영에 비하여 농업생산력을 어떻게 후퇴시켰는지도 카우츠키는 잘 알고 있었다.

카우츠키는 또한 소농이나 수공업에서와 다른 기계화된 대규모 생산시스템에서 노동자의 정신적인 쇠퇴 문제에 대하여도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가 생산의 과학적인 조직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다시 수공업이나 소농으로 돌아감으로써 해결된다고 보지는 않았다.

오늘의 현실에서 생산방식을 노동자에게 맞게 조직하는 문제는 공업이건 농업이건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사회문제가 가중될 수밖에 없는 그런 필요불가결한 과제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생산방식을 자신들에 맞게 조직할 수 있을 때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어쩌면 생산방식의 합리적 조직과 사업체의 규모 문제는 논리적으로는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농촌에서 농민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생산협동조합을 만들어 함께 일하고 함께 구매와 판매를 한다고 하는 것은 대형 농장에서 고용된 머슴으로 단조로운 일을 하는 것 혹은 기계화된 작업으로 토양과 환경을 파괴하는 것과는 다르다. 소농경영은 그런 일을 할 조건이 주어지지 않아서 못한다면, 농민들의 자발적인 협동경영에서는 그럴 조건은 마련할 수 있지만, 선택에 의해 그런 반생태적이고 반 노동적인 생산활동을 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생산을 조직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생태적 전환에서 우리는 카우츠키가 인구의 도시집중, 도시와 농촌의 분리와 대립에 대하여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 문제를 천착하여 내린 결론에 대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카우츠키의 목표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균형잡힌 노동과 문화생활의 보장이었고, 생산의 대규모화가 그 한 수단을 이루는 요소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가 생산의 대규모화를 통해 생산을 능률화해서 대량생산을 옹호했다고 유추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기계화된 생산방식이 노동자의 지위를 하락시키고 여러 가지 정신적 문제점을 가져온다는 것을 지적했다. 오히려 그는 노동의 인간화와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해 정신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과학기술의 응용을 수단시했다.

이런 점이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를 똑같이 심각하게 생각했던 동시대인인 카우츠키와 크로포트킨이 일반적으로 생산의 규모 문제에 대해서 의견이 갈리는 차이점이다.

지난호 보기

*수신을 원하지 않는 분은 sngmoo@cycleconomy.org로 요청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