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연구통신

제201212호

2012년 4월 25일 수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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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의 재활용

나는 옛날에 나온 책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고서와 헌책에 대한 취미가 생긴 것이다. 세상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물건들 중에 책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귀찮은 짐이 되어온 것도 없을 것이다. 책에 사용되는 종이와 먹물 또는 잉크는 고귀한 정신과 지식을 전달하는 매체로서 사람이 사용하는 자원 중에 가장 고급스러운 대접을 받아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책들은 사람들이 지금 읽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버리지도 못한다. 그 안에 적힌 내용이 누군가에게 제대로 읽혀서 크게 쓰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이사를 다녀도 버리지 못하고 집안의 공간을 차지하여 가정주부들에게는 그야말로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옛날 사람들에게 책은 희소성이 높아서 책을 직접 손으로 베껴 써서 가지는 일도 흔했고,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서 그 내용을 거의 외우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손때 묻은 책에 담긴 지식은 완벽하게 활용될 수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편집 ․ 조판 ․ 인쇄기술이 극도로 발달해 있고, 종이도 해외에서 원료를 들여다가 대량생산이 되어서 책을 만드는 데 드는 기계적인 인력과 시간은 많이 절약되어 책이 그렇게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들은 인터넷에 올라오는 많은 이야기들 중 자기 입맛에 맞는 내용을 골라서 읽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책을 잘 읽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책이 인쇄되는 부수에 비하여 사람들이 그 책을 구입하여 열독하는 비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어서 인쇄 ․ 제본에 따른 자원의 낭비가 발생하고 있다. 책을 구입하거나 선물 받고서도 제대로 읽지 않고 서가에 꽂아놓는 것으로 그친 비율까지 생각하면 그 낭비는 더욱 심하다.

책을 세심하게 읽고 그 책을 쓴 사람의 정신에 직접 접촉할 정도로 그 문맥을 잘 검토하는 사람은 어쩌면 그 책을 다른 나라 말로 옮기는 번역을 하는 경우일 것이다. 오래 된 책을 이렇게 번역해서 그 내용을 되살린다는 것은 옛 사람의 정신적 노동성과물에 다시 생명을 찾아주는 지식의 리사이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정신문명은 이러한 고서에 대한 끊임 없는 수집과 탐구와 재해석이 없이는 유지와 발전이 불가능하다. 당대의 직접 경험에 의해 이러한 문명의 전체 지식체계에 더해지는 새로운 부분은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지식의 영역에서는 이처럼 과거의 축적물을 다시 읽고 되살려내는 재활용 작업이 더 없이 중요하다. 이때 매개가 되는 것이 실물의 형태로 보전되어 오는 고서와 헌책들이다. 사람들이 이런 자료들을 해독하고 정리하느라 보내는 시간 동안 그들은 새로운 오락거리와 소일거리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으므로 이런 지식의 재생과정이 자원을 절약해 주는 효과는 아주 크다. 첫째로는 옛 지식을 무시하고 새로운 사실과 경험을 창출하기 위한 실험비용, 시행착오 비용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그렇고 둘째로는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새로운 관심거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새로운 소비대상을 찾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본다면, 책을 쓰거나 출판하는 행위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과제이다. 책이 인간사회의 과거경험과 현재를 이어주고, 또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주는 도구이면서 인간의 문명을 유지 ․ 발전시키는 역할을 맡을 수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고마운 물건이지만, 오래 가지 못할 책, 여러 내용을 적당히 주워모아 늘어놓는 그런 책은 엄밀히 말해서 소비의 시간은 좀 걸리지만 1회용 소비재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책이라는 형태를 띠기 때문에 선뜻 처분대상으로 폐기되기도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책은 적어도 끊임 없이 다시 읽힐 가치가 있어야 일반 상품 이상의 대접을 받을 만하다. 고서로서도 계속 구해지는 그런 책들이 재해석과 재생의 가치가 있는 책들이고 자원을 절약해 주면서 인간을 계속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이는 재활용 중에서도 다른 사람이 쓰던 중고품을 인수하여 계속 사용하는 재사용 분야에 속하는 일이다. 책만이 아니라 다른 물품들도 충분히 그렇게 오랫 동안 사용할 수 있게 정성드려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이런 문화에서는 책이나 물건을 빠른 속도로 대량으로 만들어내어야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은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시간을 초월하는 가치를 지니는 책이나 물건을 정성을 드려서 만든다고 해서 당장에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고 높은 값을 지불하면서 구매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책이나 물건을 만들어냈다는 사실 자체에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쁨과 보람의 상당부분을 찾지 않으면 그런 물건이 생겨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인생의 불확정적이기는 하지만 주어져 있는 시간을 행복하고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의미가 충만한 작업을 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시대에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나마 그런 작업의 성과물에 대한 인정과 수요를 해 줄 수 있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팔릴 것을 생각하고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기쁨을 줄 만한 작업이 될 그런 물건을 만드는 쪽으로 제조업의 노동관과 직업관이 바뀌는 것이 소비형태의 변경과 더불어 생산분야에서 필요한 때가 되었다.

불란서의 생명사상가 떼야르 드 샤르댕은 우주의 물질계가 정신적인 존재를 향해 계속 움직여 간다고 보았다. 우주를 이루는 물질 자체가 반성을 하는 수준에 도달했을 때 인간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매개로 물질은 궁극적인 높은 단계로 가는 의도를 가졌다는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을 했지만, 실제로 물건들은 품격 높은 책이나 골동품처럼 영원한 가치를 가진 물건으로 대접받기를 원하지 공장에서 산업적으로 대량생산되고, 대량 폐기되어 낭비되는 물건이 되기를 원치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가능할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물질의 품격도 존중을 해 주고, 그 물질이 방치되거나 낭비되지 않고 쓸모 있게 오래도록 사용되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물질을 가장 대량으로 신속하게 만들어서 그 즉시로 낭비할 뿐 아니라 안 좋은 일에 사용하는 것은 전쟁물자로, 폭탄 같은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라는 것은 전쟁을 계기로 만들어져서 전쟁수행에서 사용되던 기술로 생산을 하는 등 거의 전쟁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산업사회와 산업문명은 지속 가능하지 않고 전쟁을 부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전쟁의 지속상태인 것이다.

이로부터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은 물건의 품격과 물건으로서의 생명을 인간이 되찾아주는 일과 맥을 같이 하는 일이다.

연구소 소식

1. 일본 메이지가꾸인대학 구마모토 가추키 교수의 “일본의 순환형사회 만들기는 어디가 잘못 되었는가”(合同出判, 2009)의 번역서를 연구소에서 출간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9월초에 출판을 하면서 저자를 초청하여 행사도 할 예정입니다. 구마모토 교수는 작년에는 “탈원자력발전의 경제학”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산업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시민운동에도 깊이 참여하고 있는 진보적인 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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