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연구통신

제201215호

2012년 9월 13일 목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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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히 단절하지 않으면...

선거 때만 되면, 늘 지연 ․ 학연 ․ 혈연의 문제가 등장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무슨 판단을 할 때에 자신이 속한 집단과 인연의 사고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부인하기가 힘들다. 자신이 지금 속해 있는 일터나 조직 자체가 이 지연 ․ 학연 ․ 혈연을 통해서 나에게 온 것인 경우가 꽤 많다. 그것은 진보와 보수를 초월해서 한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고 따라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것은 꺼리는 경향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사는 나라와 지역의 자랑, 집안 이야기, 학교 자랑 이런 것들을 덕담이나 교훈이라고 늘 듣고 자라기 때문에 내가 속한, 내가 자라난 지역, 내가 공부한 학교, 내가 이어받은 핏줄과 나의 가족에 대해서 가슴이 벅차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고, 뭔가 유치한 수준의 집단적 과대망상이라고 느껴져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게 되어 있다.

18년을 지배자로 군림했던 박정희는 충효 사상을 의도적으로 학생들에게 주입시켜서 자기가 속한 나라의 체제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고, 부모와 집안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온순하고 부지런한 국민을 양산하여 그 위에서 지도자 노릇을 하려고 했다. 지금 어떤 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박근혜씨는 바로 그 박정희의 딸로서 그런 사고방식에 완전히 세뇌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1936년 영국의 에드워드 8세가 이혼경력이 있는 미국인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했을 때 영국 왕실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경악했고 그에게 등을 돌렸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재벌 2세, 3세들로 후계자로 선택된 자들은 거의 감정이라곤 없는 로보트처럼 아비가 하던 일을 물려받아 개인의 자아는 잃어버린 채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태연히 살아가고 있다.

이런 개성도 영혼도 없어 보이는 아비의 분신들이 한국 체제의 지배세력으로 활개를 치는데 아이들에게 자기가 속한 집단과 자기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과는 다른 길을 가라고 가르치는 것은 무능한 부모이거나 무책임한 스승일 것이다.

박근혜씨는 자기 아비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그래서 자기 아비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효도를 절대시하는 한국의 보수세력의 코드에 맞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박정희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략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에 태어나서 자라난 연령층을 중심으로 한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국가와 부모의 지시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배운 세대이고, 이에 거역하는 것은 빨갱이라는 괴물이나 하는 짓이라고 배운 세대이기 때문에 박근혜씨의 행보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소년 세대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변화된 환경에서 미래의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부모세대의 훈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몸에 좋은 것 많이 먹고 많이 공부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경쟁에서 이겨서 좋은 직장에 다니라는 메시지는 세상에 대해 무책임하고 미래를 담보해 줄 수 없고, 게다가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것을 당사자들인 자라나는 세대가 모를리야 없지 않겠는가?

앞선 세대의 지시에 따라 서바이벌게임 하듯이 인생을 살아왔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알아 온 과거세대는 이번 선거에서도 같은 인생관을 반영하는 세력의 대표인물을 위해 표를 던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생관이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를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갖고 결론이 내려지지 않으면, 과감하게 투표를 포기하기를 이분들에게 바라고 싶다.

연구소 행사를 마치고,...

연구소에서는 지난 9월 3일부터 5일까지 일본의 구마모토 가즈키 선생을 초청하여 그의 책 “일본의 순환형 사회 만들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의 출판기념회, 탈핵강연회 등 여러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시민, 농민, 어민의 입장에서 매립지 조성, 쓰레기문제, 그리고 원자력발전소 건설문제에서 관료, 산업계와 맞서 연구를 해 온 분으로 그의 명쾌한 논리와 열띤 강연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번역된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도 있지만,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시에 조선에서 연행되어 간 조선 사람의 후예로서의 정체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런 정체의식이 경제성장 일변도의 일본 국가체제에 대한 저항 의식과 생명 사상을 형성해 주지 않았을까 추측이 되었습니다. 구마모토 선생의 책이 박정희 시대 이후로 경제성장에 미쳐 모든 중요한 가치를 희생시켜 왔고 아직도 반성을 모르는 한국의 지배체제에도 경종을 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의 출판과 행사를 계획했었습니다.

그런 일본의 지식인 한 사람을 알게 된 것이 한국의 시민사회와 저희 연구소에는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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