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연구통신

제201220호

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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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 탈출에 이르는 고민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있다.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에 사는 인간들이 하도 타락하여 신이 분노하여 그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때 아브라함이라는 자가 신의 진노를 거두기 위해 노력한다. 그 도시에 의인 50명이 살고 있다면 과연 그래도 그 도시를 쓸어버려서 그들까지 다 불태워 죽일 작정이냐고 신에게 묻는다. 신은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한다. 아브라함은 다시 50명에서 만약 다섯명이 모자란 45명의 의인이 살고 있다면 어찌할 거냐고 다시 묻는다. 신은 그래도 양보를 하겠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염치를 불구하고 다시 세 번째 질문을 한다. 만약에 45명이 아니라 40명의 의인이 살고 있다면, 다섯 명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당신은 이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 작정이냐고 묻는다. 지금 나와 말장난하자는 것이냐?

그 도시에 의인이라고 할 사람은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모를 리 없었다. 그것을 아는 아브라함이 신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상황이다. 신이라면 이런 상황을 모를 리가 없다. 아브라함이 쓰는 수가 너무 유치하고 가소롭지만 그냥 신은 대꾸를 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아브라함은 30명, 20명 드디어 10명이 된다면 하는 가정에까지 내려갔다. 신은 아브라함이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안쓰러워서 일일이 대답을 해 준다. 10명이라도 의인이 살고 있다면, 내가 그들을 봐서라도 그 도시를 쓸어버리지는 않겠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차마 그 이하의 인원수로는 물어보지는 못한다. 아브라함이 알 만한 의인은 10명이 넘을 리가 없었다. 아브라함은 더 이상 묻지를 못한다. 아브라함 자신이 불의한 자들과 불의한 질서 속에서 타협하면서 살아 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아브라함 자신이 알고 지낸 소돔 고모라 사람들의 불의를 그냥 방치한 결과 그 도시에 제대로 된 사람이 10명도 안 되는 상황까지 온 데 대한 책임이 아브라함에게도 있다.

인간사회는 대체로 선량한 사람들로 이루어지지만 그중에 불의에 굴하지 않고 투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그 숫자가 아무리 작아도 존재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사정을 잘 아는 아브라함은 그 도시 안에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진 의인의 존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예견했다.

우리는 지금 시대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불의한 시대라는 것을 절감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인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정상적인 사회 가운데서 “괴짜”라거나 이상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바른말을 하고, 대세에 추종하기보다는 역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배출한 땅은 아직 생명력이 고갈된 땅이 아니고 영 못쓰게 된 땅은 아니다. 소돔과 고모라라는 땅은 그런 사람들을 배출하지 못할 만큼 오염된 땅이고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런 오염을 일으킨 것은 결국 불의한 사회구조였다. 그러나 생명력이 고갈되지 않은 땅은 못쓰게 된 사람들과 함께 아직 양심이 살아 있는 인물도 배출한다.

아브라함은 사실 소돔과 고모라의 상황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다. 소돔과 고모라의 땅은 의인을 배출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어떤 희망이 있지 않은가 그런 가능성을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50명의 의인과 45명의 의인은 거의 차이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 45명과 40명의 의인도 별 차이는 없다. 이런 식으로 해서 의인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간에 별 차이가 없을 가능성까지도 생각하여 소돔과 고모라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하려 했으나 그것이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결국은 인정하고 만다.

이 땅에 과연 희망이 있는가? 이 땅은 아직 뜻이 곧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는가? 오염된 땅은 상당 기간을 그냥 묵혀두면 햇빛과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천천히 정화된다. 그러면 그 땅은 조금씩 생명력을 회복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 오염물질이 계속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을 길러내는 데서 땅을 비롯한 이런 물리적 환경은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인간교육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맑은 환경을 되찾고 지켜내는 것이다. 한국의 산하는 크게 오염이 되어 있다. 대도시 지역이 더 심하다. 가히 소돔과 고모라처럼 희망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면 그곳을 빠져 나와야 한다. 희망이 없는 곳에 살아 보아야 개선될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굉장히 심각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소돔에도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같은 선량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량한 사람과 의인은 다른 사람이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더 이상 정의에 목마른 의인이 길러질 수 없다면, 이를 아는 교육자, 가장이라면 서울을 떠나야 한다. 그렇다는 것을 알지만 용기가 없어서 그러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격이 없는 교육자요 가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 사회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무서운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오염된 토양과 환경, 이 때문에 먹을거리가 오염되고 마실 물이 오염되고, 들이쉬는 공기가 오염되고 보고 듣는 것이 오염된다면 아무도 이 땅을 구제해 줄 수가 없다.

그러나 지구 자체는 그렇게 간단한 곳이 아니다. 지구라는 거대한 복합생명체가 인간의 자본주의 사회구조와 치밀한 두뇌싸움을 하고 있다. 무서운 싸움이다. 개별 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어느 편엔가 가담하게 된다. 땅 위에서 인간들은 어떤 우주적 도깨비들 간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는 아직 꿈틀거리며 저항하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자본의 힘이 온 땅을 호락호락 점령하지는 못한다.

대도시 지역 내부에 지구생명 편의 진지가 과연 구축될 수가 있는가? 그 진지가 지켜지고 대도시 안에서의 싸움에 승산이 있는가 하는 데 대해서는 심각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희망을 품는 사람이 있다면, 뭘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자본의 편에서 오염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을까? 우리 자신에게 그런 의문이 제기된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는 데서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얼마간 고민을 했었다. 그것은 연민의 마음 때문이건 도덕적 의무 때문이건 지켜야 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풀이 돋아날 수 없는 사막이라면 그곳에서 녹색을 염원하며 살아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래도 그곳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면, 과연 나의 희망은 순수한 것인지, 내가 정녕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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