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연구통신

제201221호

2012년 11월 9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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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 평화의 관점에서 원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

1. 종교적 언사와 사회적인 상식

원자력발전소를 짓고 거기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신의 창조질서를 거역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곧잘 쓴다. 그것은 절대악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자라게 하고 인간에게 보이도록 놓아둔 신의 의도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있는 것처럼 물리학과 화학이라는 학문을 할 수 있는 인지능력과 호기심을 인간에게 주고, 인간이 엄청난 힘을 그 안에서 찾아내도록 지능을 준 신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원자력은 인간이 절대로 손을 대어서는 안 되는 동력원일 수도 있지만, 그 이유를 신학이나 신앙에서 찾기 시작하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정신적인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아이들은 집에 성냥과 라이터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불장난을 하면서 불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는 것이다. 불장난은 절대 안 돼 라고 하는 어른들의 금지령은 아이들에게 잘 통하지 않는 것이 정상적이다.

생명과 평화를 옹호하는 종교인들이 그런 절대주의적 신앙을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그런 절대적인 언사를 사용할 때 이는 그들이 원자력에 관한 여러 가지 현존하는 과학적 지식들을 생명 ․평화의 관점에서 검토하고서 도달한 결론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종교적인 언사를 구사하는 것이다. 신념을 그렇게 종교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더 이상 정신적인 권위를 갖지 못하며 종교인들이 절대적인 언설을 사용할수록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가기 위한 논의에서는 배제되는 역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원자력 에너지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어서 인간이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믿음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구가 유지하고 있는 체온도 태양에너지와 함께 지구 내부에서 열을 내고 있는 방사능 물질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작렬하는 태양도 물질의 소멸에 의해 발생하는 에너지로 지구에 빛을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세상에 원래 악한 것, 손도 대지 말아야 할 것이 있겠는가? 다만, 인간사회가 지금까지 축적해 놓은 경험과 지식으로 볼 때 어떤 기술이 자신과 생태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규범과 기준에 미달하면 그 기술의 도입을 보류하는 것이 타당할 뿐이다. 그러한 기준을 사회가 세워놓고서도 번번히 지키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결국 장기적인 생존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가름날 것이다. 그렇다면 원자력 에너지의 이용 기술은 어떤 것일까?

2. 원자력 에너지의 사회적 특징

땔나무나 석탄, 석유, 수력 등 다른 에너지원과 원자력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인가? 원자력 발전의 연료가 되는 우라늄은 태양에서 온 것이 아니고, 지구를 조성하는 암석과 흙 속에 미량으로 분포되어 있다. 화학과 물리학 등 자연과학 지식이 비약적으로 발달하여 물질이 소멸하면서 다량의 에너지가 생성된다는 공식, 물질과 에너지는 결국 같은 것이라는 공식이 발견되어 원자력 에너지의 이용 가능성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자연에 존재하는 힘을 이용하려는 인간의 노력에서 발견된 에너지라는 점에서는 다른 에너지들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원자력은 거대한 부를 축적한 현대국가가 마련해 주는 연구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고도의 정신노동과 자연에 미량으로 산재해 있는 우라늄을 농축하는 비싼 시설과 기술, 원자로와 배관시설을 설치하기 위한 첨단의 야금기술이 체계적으로 조직되지 않으면 이용할 수가 없는 에너지원이라는 특징이 있다. 인간사회에서 이런 제반 조건이 모두 갖추어진 것은 20세기 초중반이었다. 다른 에너지원을 이용하는 것은 어디서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알 수가 없어 발명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원자력 에너지는 에디슨이 전등을 발명한 것처럼 분명하게 그 창시자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발명품이다.

즉, 원자력은 이름 없는 민중의 생활세계에서 영리하고 손재주 있는 기술자들이 여기저기서 이용하게 된 에너지가 아니고, 고도의 국가행정과 산업문명으로 체계화된 산업사회에서 비로소 발견, 발명, 개발된 에너지라는 특징이 있다.

다른 연료들과의 또 한 가지 차이점은 다른 연료들이 별다른 쓰레기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반면에 원자력 에너지는 심각한 쓰레기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땔나무는 연소가 되면 재를 남기고, 석탄도 우리가 아는 연탄재 같은 폐기물을 남긴다. 석유는 정제과정에서 많은 공해물질을 배출하지만, 그것들은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다시 산업원료로 활용할 수가 있고, 정제된 석유를 연료로 사용한 후에는 아무런 쓰레기가 남지 않게 된다.

목탄, 석탄, 석유 등이 사용되던 때에는 별다른 폐기물관리 대책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에너지와 쓰레기 문제는 별로 관계가 없었다. 그밖에도 쓰레기 일반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도 없었다. 그러나 원자력 에너지의 경우에는 전혀 차원이 다른 쓰레기 문제가 수반되며 이는 현재의 산업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쓰레기 관리 행정 및 처리보관 기술로 감당할 수 없는 차원의 문제가 되어 있다.

3. 산업사회의 과학기술 활용의 결함

어떤 기술이 발명될 때는 그 기술에 의한 편의의 이용에 초점이 맞추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발명의 단계를 넘어서 일정한 규모로 개발이 이루어지고 이를 실제로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편의성만이 아니라 전과정(life-cycle)에 대한 치밀한 영향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맞다. 그것이 현대 산업사회의 문명에 걸맞는 절차이다. 물론 전쟁중에 급히 신무기를 개발하거나 수송수단을 개발할 경우에는 꼭 필요한 기능 외에 다른 고려는 생략하게 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있다. 원자력 에너지도 2차대전 중에 개발되고 사용된 원자탄이 그 시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종전 후에 원자력의 무서운 위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자는 아이젠하워의 구상이 제기되었을 때는 전쟁중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대 산업사회의 규범에 걸맞는 검토가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하고 원자력 발전이 시작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원인을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원자력 발전의 전과정에 대한 환경적 경제적 평가를 할 능력이 없었다. 2) 평가를 할 능력이 있었지만 그 결과는 원자력 발전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를 할 수가 없었다. 3) 미국 정부와 업계가 급하게 프로젝트를 추진해서 그 절차가 생략되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1950년대의 과학 수준으로 전과정에 대한 평가를 할 능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당시에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많은 과학자들의 언급이 있었다. 그런 전과정의 영향에 대한 평가는 과학자들이 할 수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한 외부의 정치적 정책적인 압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이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도 활동을 하려면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처럼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등장할 때 원칙으로서 지켜야 하는 것은 사전예방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라고 최근에 정립된 상식이다. 이는 그 문명의 이기의 사용에 따른 위해성이 없다는 것을 입증할 때까지는 그것을 현실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그것의 위험성에 대한 정보가 없거나 불확실할 때에는 그 정보가 명확하게 밝혀져서 위험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기까지는 그 사용이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 단순한 원칙이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전쟁이나 재난과 같은 비상시가 아닌 평시에도 늘 무시된다. 원자력 에너지의 이용도 이런 기준이 무시되었기 때문에 시작될 수 있었다. 한마디로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을 어떻게 제어할지도 알지 못하면서 엄청난 힘이 필요한 노동을 시키기 위해 실험실 바깥으로 데리고 나온 것이다.

첨단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현대 산업문명이 가진 치명적인 결함이 이런 것이다. 체계적인 고등교육제도와 막대한 연구개발 자금, 신기술을 상용화시키려는 산업계의 노력이 결합되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기술들이 곧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쏟아져 나오지만, 그런 기술들이 생명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고 이에 따라 실제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의사결정 구조는 늘 작동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현대 산업사회를 하나의 생명체에 비유하자면 머리와 힘은 굉장히 좋지만 그 머리와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욕심과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자신과 주변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파괴를 일으키는 괴물에 비유할 수 있다.

이는 원자력 에너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산업문명 자체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원자력 에너지의 영향이 워낙 크고 그것이 발등의 불로 닥쳐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특별히 심각해 보이는 것이지 사실은 산업사회의 구조 자체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런 사회에 살게 된 것일까?

미지의 자연법칙을 규명하려는 인간 정신의 산물인 과학은 유사 이래로 머리 좋고 뜻이 고상한 인재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과학정신이 미신과 금기를 깨뜨리고 허울뿐인 권위에 도전하게 하여 더 평등하고 합리적인 세상을 향한 진보에 동력을 제공해 왔다.

이 과학정신은 사실은 땅을 경작하고 벽돌을 쌓아 집을 짓는 등 자연과 접촉하여 노동을 하는 인간의 머리에서 싹튼 것이며, 도시에서의 상업활동에서 비롯된 계산능력과 추상적인 수리적 연산능력이 결합하여 점차 지금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이 과학자들은 왕실과 부자들의 부양을 받았지만, 전통과 형식을 벗어나서 진리의 탐구에 무지한 권력자들과 재산가, 성직자들을 조롱할 수 있는 기백이 있었다.

과학자들의 지적 탐구의 결과물을 공업생산에 이용하는 에디슨, 라이트형제 같은 발명가들이 생겨나면서 산업과 국가의 패권 추구에 과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간파한 부르주아 사회는 고등교육을 체계화시키고 아낌 없는 예산지원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과학은 천재적인 개인의 고독한 사색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실험실을 중심으로 분업화되며, 과학적인 지식의 발견과 그것의 응용과 상업화에 이르는 시간적인 거리는 크게 단축되어 간다. 만약 과학적 지식의 발견이 있어도 그것을 실증하고 상업화할 자금이 사회로부터 공급되지 못한다면, 새로이 발견된 특정한 지식을 응용하는 기술은 독지가를 만날 때까지 오랜 세월을 도서관이나 대학 내에서 전수되는 상태로 머물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그 기술이 가지는 온갖 잠재성과 영향에 대한 사실들이 차근차근 쌓이게 되고, 그에 대한 대비책도 이를 다루는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마련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만들어진 고등교육 체계와 공학을 산업에 응용하는 산업 시스템 간의 거리는 그러한 완충적인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산업계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다수 고용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고등교육 기관들이 생겨나고 이들이 과학의 성과를 산업적으로 응용하는 역할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과학계와 생산업계 혹은 경제계간의 거리가 크게 좁혀진 것이다. 이처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증가와 사회적인 확산은 엘리트 계층에 의한 지식의 독점을 깨뜨리고 사회의 민주화에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이에 걸맞는 과학기술의 산업적 응용에 대한 완충과 여과장치가 마련되어야 했다. 그것은 애초에 사회적 책임성을 기대할 수 없는 산업계의 몫이 아니라 과학자들과 정치인, 국가관료의 몫이었다. 또 고등교육의 확산에 따른 지식세계의 민주화라고 하지만 동시에 지식이 전문화되면서 과학계와 관련 산업계 간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이들과 일반 시민사회 간에 높은 울타리가 쳐지게 된다. 과학자들은 진리탐구를 위한 연구만 하고 자신의 연구결과가 어떻게 이용될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갈릴레이나 뉴튼 시대의 세상과 초연한 과학자의 태도를 지금의 과학자들이 벗어나지 못한 것이 큰 문제이다. 지식사회가 민주화된 만큼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결과가 경솔하게 응용되는 것에 제동을 걸 책임이 있으며, 이를 위해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서 시민사회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정치인들도 과학기술의 성급한 산업적 응용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과학기술의 잠재성에 대한 낙관이 자유주의, 사회주의 할 것 없이 진보 진영에 팽배해 있었다. 국가관료들은 국가의 대외적 패권 추구에서 언제나 산업계와 공조를 취했으므로 이러한 과학 ․기술 ․산업의 카르텔에 대한 무방비적인 태도를 지녀왔다.

그 결과가 지금과 같은 위험한 세상이다. 도입 당시에 예상되었던 악영향을 감안할 때 그중에서도 가장 경솔하게 도입된 것이 원자력 에너지이다. 요컨대 원자력 에너지는 18세기에 서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화 과정의 필연적인 결과물 중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200여년 동안 구축된 산업문명은 과학과 산업의 관계를 통제하지 못하여 이제 제 무덤을 파고 있는 형국이다.

4. 생명과 평화의 관점에서

이 산업문명이 지속되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계속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다가 필경 사고에 의해 산업사회가 무너져 가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힘 있는 자들이 모여 사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발전소 인근의 주민들, 원자력 발전에 대한 지식과 그로부터의 이득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산업문명의 부도덕한 점이다. 따라서 산업문명의 파괴적인 작용에 염증을 느끼더라도 이 문명이 그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붕괴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면서 새로운 대안사회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만이 아니라 비교적 오래된 에너지원인 석탄을 캐는 광산에서도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그래도 광산개발 기술은 500년 이상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갱도붕괴 등의 사고위험에 대비하는 데 기술적인 문제는 없다. 단, 경제적인 고려와 안전상의 고려가 매순간 대립하면서 경제적인 고려가 앞서게 되면 사고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식민지 시대에 일본 산업계는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용하여 위험한 채탄작업을 시켰고, 경제적인 고려를 앞세워 광산노동자들을 희생시켰던 역사가 알려지고 있다. 산업화된 어느 지역에서나 그러한 생명경시의 이윤추구가 지금의 산업문명을 건설한 자본축적의 바탕이 되었다.

지금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운영관리 등 제반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런 의사결정은 위험의 피해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경영진이나 정책당국자들에 의해 내려진다. 이처럼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산업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산업화 초기에 나타났던 야만적인 희생이 되풀이되는 것이 문명화되었다고 하는 현대 산업사회의 모습이다. 산업화과정의 역사적 진실을 계속 규명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대안사회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원자력 발전소가 전세계적으로 435기 한국에만 23기가 가동되고 있는 것은 결국 산업문명의 치명적인 결함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를 중단시키는 실마리는 원인제공자인 국가나 산업계가 아닌 민주적인 시민사회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과학․공학․산업의 정보독점을 깨뜨리기 위해 사회적 의식이 있는 과학자들과 시민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지방분권이 이루어지고 지역 주민들의 의사가 존중된다고 해서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원자력발전소가 아니더라도 지역의 경제가 원만하게 돌아갈 수 있고 인구가 떠나지 않도록 해 줄 만한 생계의 기반이 있어야 지역민이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된 지역이 어떤 발전을 했는지에 대한 사례가 중요하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때 추진된 TVA 사업은 1929년의 대공황을 극복해 낸 공공사업에 의한 고용창출 정책의 사례로 많이 인용된다. 그 당시 테네시 계곡에 수많은 댐과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었고, 그곳은 미국 전력산업의 요충지가 된다. 1960년대부터는 이를 이어받아 다수의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되었고, 정부의 막대한 자금이 그 지역으로 유입되었다. 그러나 그 지역은 미국의 다른 농촌지역에 비해 소득이 낮고 활기가 없는 지역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중앙정부의 지원에 의존하여야 경제가 유지되는 밑빠진 독과 같이 되었다는 것인데, 어느 학자는 외부로부터의 산업유치가 그 지역의 산업생태계와는 상관 없이 정책적으로 이루어져서 그 시설에 근무하는 외지인들이 지역경제와는 상관 없는 삶을 살고 지역민들은 이로부터 소외된 결과를 초래했다고 하는 “왜 TVA는 실패했는가?”하는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이는 국가관료기구와 산업에 포섭된 경제학자들이 잘 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종교에서는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말한다.

생명은 당연히 땅으로 대표되는 생태환경이 건강할 때 건강하고 다양해진다. 평화는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토대가 있지 않으면 소시민들의 위선적인 주장이 되기 쉽다. 결국 종교에서 말하는 생명․평화의 가치는 건강한 환경과 건강한 경제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은 토양과 연안생태계를 못 쓰는 땅과 물이 되도록 오염시키고 황폐하게 만든다. 연료가 되는 우라늄 광산 주변의 생태계에도 그 광산 폐기물로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원자력발전에 의한 에너지 공급은 국가의 인프라 지원을 받는 수출 중심의 대형 산업경제를 위한 것이지 소도시와 그 주위의 농촌이 서로 보완관계를 이루는 지역경제를 위한 것이 아니다. 마을 공동체에서 지역경제로, 지역경제에서 민족경제로 기본적인 자립을 기반으로 서로 간에 연관성을 확대 갈 때 노동자들도 자기 땅과 자기 기역에 기반을 두게 되며 어느 지역도 소외당하는 일 없이 경제가 민주화되고 평화가 보장된다.

국민경제의 성장을 위한 국가의 패권 추구가 지속되는 한 전쟁의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평화의 토대를 제공하는 순환적인 지역경제에 대해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방해가 된다. 지역의 인구와 건강한 경제를 위한 토양과 환경의 건강성이 보장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지역 내에서도 농림어업 같은 지역의 풍토와 특색 있는 환경에 의존하는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과 도시와 같은 편리한 인프라를 건설하여 부동산 가치를 높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다르다. 외부의 지원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원전유치에 찬성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들은 대도시 못지 않은 인공적인 환경을 원한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지역의 자생력을 잃게 하고 내실이 없이 금융에 의존하는 경제를 가져온다. 이 모든 폐해의 출발은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진치고 있는 금융자본과 글로발한 시장을 무대로 생산활동을 하는 산업계, 그리고 국가경쟁력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관료들의 합작품이 아닌가?

당장은 볼품없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지역민들의 삶을 지탱해 주고 지역의 풍토와 어울리는 경제활동과 건강한 후세양육을 할 수 있는 지역경제를 만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는 대가로 외부의 돈을 받아들여 화려한 도시를 건설하지만 미래가 없는 지역을 만들 것인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생명과 평화의 관점에서는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명과 평화를 옹호하는 종교인의 입장은 분명히 정해진다.

연구소 소식

1. 이승무 소장은 지난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29일부터 31일까지는 동경에서 일본 환경성, 경산성, 산업폐기물적정처리진흥재단, 산업폐기물처리진흥센터, 그리고 이바라키현의 종합폐기물처리시설인 환경보전사업단을 방문하고 산업폐기물 관리제도에 대한 조사활동을 했으며, 11월 1일부터는 후쿠오카, 나가사키, 사가현, 야마구치현을 버스와 자건거를 이용하여 평화기행으로 방문했습니다. 11월 1일부터의 방문기는 연구소 홈페이지 ‘순환경제자료실’ 게시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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