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연구통신

제201319호 [통권 제148호]

2013년 5월 31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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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경제와 거주이전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Freizügigkeit)는 우리나라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에 보장된 인권에 속한다. 서구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수많은 농촌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공업지대로 떠나던 시절에 지주들은 이러한 거주이전의 자유를 어떻게 해서든지 제한하여 농민을 농촌에 붙들어두려고 했었다고 한다. 사람이 누구나 한 나라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곳에 가서 사는 것을 강압에 의해 금지 당하지 않는 것을 거주이전의 자유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조선시대까지 특수 신분계층인 왕족이나 천민의 거주지가 제한된 것을 예외로 하면 평민들에게 법적으로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법적인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어도 각 고장에는 향약, 두레, 계 같은 관습적인 관계망이 있어서 사실상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땅을 얻어 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권이 확립된 일제시대 이후에야 어디서든지 땅을 사거나 임차하면 주위 사람들의 의견에 상관 없이 그곳에 살 권리가 완벽하게 주어진다. 이때부터는 사실상 재력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거주이전의 자유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땅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은 원하는 곳에 가서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살던 곳이 개발이 되면, 그곳에서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즉 돈이 없으면 조상 때부터 살아온 고향에서 떠나야 하는 일도 발생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헌법에 보장된 거주이전의 자유는 의미가 없다.

군주를 정점으로 한 신분제 사회에서 공화정 체제로 바뀌면서 신분제도와 관습에 따른 거주이전의 제한은 폐지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토지의 사유재산권에 의한 거주이전의 제한은 더 악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군사보호지역, 미군기지, 민간인 통제구역과 같이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고 그곳에 있던 민간인도 떠나야만 하는 특수한 영역이 적지 않다. 분단체제 하에서 한반도 전체에서 군사요새가 가장 우선적인 입지 배정의 대상이 되고 있어서 거주이전의 자유가 그 때문에 제한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자급자족의 특성을 가진 특정 지역의 순환형 경제는 옛날처럼 지역 간에 통행이 어렵고 거주이전의 제약이 많았을 때 저절로 형성되었다. 사람들이 그러한 지리적 여건과 관습에 적응하여 경제활동을 함에 따라 각 지역의 독특한 순환형 경제가 만들어지고 또 각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관습이 형성된 것이다.

반대로 교통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지역 간에 수시로 이사를 다니는 사회에서는 순환형 지역경제가 발달하기가 쉽지 않다. 바로 우리나라가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겨서 혹은 일자리를 찾아서 살던 땅을 계속 떠나야 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좋은 환경과 건강을 찾아 어디든지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옮겨 다닌다. 엘리트 직장인들은 그들대로 마치 미군들처럼 전세계를 무대로 이리저리 거주지역을 옮겨 다니는 일이 많다.

옛날과 같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순환형 지역경제와 문화를 부활시키기 위해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한가한 공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쏘련이나 북한의 국내 여행증명서, 그리고 지역간에 이주를 할 때 필요한 취업확인서 같은 제도를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헌법상의 거주이전의 자유는 인권이라는 점에서 볼 때 평등하게 보장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과도한 거주이전으로 사람들이 내몰리면서 국토환경상의 부작용이 심각한 것으로 볼 때 너무나도 결함이 큰 기본권이라고 생각된다.

거주이전의 자유를 인권의 관점에서 보호하면서도 지나친 인구이동에 따른 지역 정체성과 환경의 파괴를 방지하고 순환형 경제를 되살릴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일정한 정도로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제한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역공동체에 공동으로 향유할 수 있는 땅과 시설이 늘어난다면 전입과 전출의 절차가 좀더 복잡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지방의 고등교육기관과 공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들이 사람을 뽑을 때 그 지역 출신 인재들에게 높은 비중을 두는 것도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단위 택지개발과 같은 사업을 억제하여 원주민의 거주권리가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땅과 산천의 모양을 이리저리 바꾸는 대규모 토목공사가 환경을 파괴하는 것일 뿐 아니라 문화도 파괴하고 순환형 경제를 방해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자의에 의한 것이건 타의에 의한 것이건 지금까지의 과도한 인구이동의 영향에 대한 반성에 기초하여 그렇게 배려가 되어야만 거주이전의 자유가 기본권다운 기본권으로서 존중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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