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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경제연구통신 제201328호 [통권 제157호] 2013년 8월
18일 일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연구소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 173번지 삼창 프라자 1522호. 전화:070-7767-5510 팩스 02-717-5510 ≪농촌문제≫ 저는 지난 8월 5일부터 14일까지 여름휴가를 보냈습니다. 토요일, 일요일과 공휴일을 포함하면, 13일이나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집에서 틈틈이 명상수행을 하면서 칼 카우츠키의 ≪농촌문제≫Agrarfrage라는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초고상태까지 끝을
내었습니다. 작년에 구마모토 가즈키 교수의 책을 번역하고, 관련
행사를 진행한 것이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 후에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이 책과 중국에서 나온 ≪순환경제학개론≫을 번역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더 흥미가 있을 순환경제학개론은 진도가 별로 나가지 못했지만, 출간된 지 백년도 더 지난
≪농촌문제≫는 오히려 속도를 낼 수가 있었던 것은 도시와 농촌의 관계,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구상, 관료제와 지방분권 등 최근에 제가 관심을 많이 가진 문제들을 둘러싼 내용들이 계속 이어져서 책을 손에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데 이유가 있습니다. 책 제목은
Agrarfrage인데 지금까지 이 책 제목을 “농업문제”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Agrar-는 땅, 토지라는 뜻이어서 정확히 번역하면, “대지(大地)의 문제” 또는
“흙의 문제”가 되어 버립니다. 대지나 흙은 결국 소설의 제목으로 쓰일 때도 농촌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지금의 경우에도 “농촌문제”가 적당한 번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상 그 내용도 농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 벌어지는 경제활동과 인간의 생활 전반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법칙상 소농경제가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상세히 논증하고 있어서 농촌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별로 환영 받을 만한 책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제법칙은 법칙이고, 카우츠키는 농촌의 자본주의화가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물질순환과 병충해의 문제에서도 그는 자본주의적 농업이 이전의 다양한 생물종들을 품은 소농경제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을 잘 알고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농업의 혁명화는 그들 모두에게 몰이사냥의
시작을 알린다. 그 안에서 그들은 기진맥진하여 허물어질 때까지 무자비하게 쫓겨다닌다. 몇몇 잔인한 행운아는 예외인데 그들은
쓰러진 자들의 몸 위로 날아올라 사냥감을 쫓는 자들, 대자본가의 대열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냉혹한 경제법칙에 대한 인식과 휴머니스트로서의 입장이 동시에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직업군인인 상비군체제, 군사주의, 관료적 중앙집권에 대한 반대입장, 개성과 개인주의에 대한 중시, 이를 위한 자기 집의 필요 이런 것들을 사회주의 사회의 모습으로서 옹호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분권화된 민주주의 사회의 특징들입니다. 칼 카우츠키의 글은 문장구성이 평이하고, 논리전개가 명확하고 쉬운 편이어서 읽기가 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그의 기본적인 사회발전의 철학에서 역사적 유물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역사적 유물론에서는 물질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어떤 정신적인 요인이나 인간의 정신적 특성도 설명변수에서 배제가 되며, 어떤 사건이나 사태의 전개도 명확한 물적인 관계에서 모두 설명이 됩니다. 그것이 꼭 과학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과학에서는 명확하게 설명이 되는 부분 외에 아직 설명이 되지 않은 부분이 일정하게 존재합니다. 통계학에서 말하는 잔차 같은 것이지요. 사실 과학적인 수준에 걸맞는 사회과학을 했다고 할 수 있는 학자는 우파에서 좋아하는 빌프레도 파레토(Pareto)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과학도 이야기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가 없고, 이야기라면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는 엄밀한 자연과학적 방법론으로 설명을 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유물론적인 입장에 충실하게 설명을 하는 것이 듣는 사람에게 훨씬 쉽고 명확한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을 특별한 존재로 보기보다는 생존의 욕구, 종족보존의 욕구, 그리고 물질과 권력의 획득을 위한 욕구에 충실한 존재로 보는 전제에서 설명을 해 나가기 때문에 어떤 고귀한 이념이나 전통의 영향에 대해서도 환상을 깨뜨리게 해 주므로 조금 기분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야기 전개의 투명성과 설득력이란 측면에서는 다른 어떤 입장도 그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카우츠키의 책을 우리 말로 옮기는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독일어이지만 카우츠키의 사상과 문장에 그런 장점이 있었던 데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느 한 사람의 글을 계속 읽거나 번역하다 보면, 그 사람의 패턴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게 되고 또 어느새 그 사람의 사고의 전개에 익숙해져서 그 사람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기가 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카우츠키는 학술적으로는 냉혹하게 적용되는 역사전개의 물질적 법칙을 발견했다고 믿은 사람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인간 개인의 자유로운 개성과 존엄성, 그리고 사회주의 그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은 휴머니스트로서의 이상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고상한 인품과 깊고 방대한 학식을 가진 지식인이었습니다. 그가 볼셰비키 혁명의 방법에 관하여 레닌과 대립하면서 유럽의 사회주의 정치계에서 영향력을 상실했고, 본질상 사회주의자가 될 수 없는 부르주아의 다윈주의자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지만, 우리에게는 카우츠키를 그렇게 비판할 자료도 없고, 그럴 수 있을 만한 학문적인 실력도 없고 도덕적 우위의 입장도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전해 내려오는 학문적 전통이 소수의 분야를 제외하고는 없어서 일본과 서양에서 수입된 학문을 배우기 시작한 데서 사회과학을 하는 입장이고, 사회과학 분야에서 방법론적 엄밀성이나 철학적 깊이, 지적인 폭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서유럽 학계가 19세기에 도달한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 한국인은 서양이 200년 동안 달성한 것을 50년 동안 달성한 압축성장을 한 것을 자랑 삼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빨리 달성했다는 것인지, 그 분야가 명확히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마 다리를 놓고, 고층빌딩을 세우는 기술, 공장을 건설하여 대량생산을 하고 풍요로운 물질적 소비를 하는 분야, 그리고 민주주의적인 선거제도와 민주공화국 헌정제도 분야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야에서 압축성장을 한 것이 겉모양만 그런 것인지, 실제로 기초부터 충실하게 닦은 기반 위에서 그렇게 된 것인지가 심히 의심스럽고, 표준이 되어 있는 서양 학술의 기준으로 본다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찰과 학문의 분야에서는 최소한 100년에서 150년은 족히 뒤떨어졌다고 하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전해 내려오는 동양적 방법론이 전혀 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농촌문제”에 대해서는 농업문명인 조선시대의 많은 유학자들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동일한 주제를 다루는 데서 동서양의 학문적 접근방식이 비교가 필요합니다. 프랑스의 18세기의 중농학파 경제학, 독일의 튀넨, 영국의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의 고전경제학이 모두 농촌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된 것을 주목한다면 농촌문제가 서양의 사회과학으로서 경제학의 출발점이 된 것이고, 동양에서도 전통적인 학자층에서 사회과학이 지속적으로 발달했다면 그것은 농촌문제의 분야에서였을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경제사를 연구한 백남운, 전석담 같은 분들은 조선의 경제사를 연구한 것은 맞지만, 학문적인 전통에서 조선의 실학을 계승한 것이라고는 말하지 힘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일단 카우츠키의 ≪농촌문제≫는 19세기말의 중심적 사회문제인 농촌문제를 이론적 실증적으로 다룬
서유럽 사회과학의 성과를 종합한 작품이므로 역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농촌문제를 피해갈 수 없는 한국의 학계에서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할 책입니다. *수신을 원하지 않는 분은 sngmoo@cycleconomy.org로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