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연구통신

제201401호 [통권 제176호]

2014년 1월 3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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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관하여

어떤 사람이 자살을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유서가 발견되었다. 그 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총칼없이 이룬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한 쿠데타 정부입니다. 원칙을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그 원칙의 잣대를 왜 자신에게는 들이대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국민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공권력의 대선개입은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개인적 일탈이든 책임져야 할 분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이상득, 최시중처럼 눈물 찔끔 흘리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던 그 양심이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이 아니길 바랍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을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나는 이 유서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말미에 “공포와 결핍을 가져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이 말만 빼면, 이것이 유서라는 것을 짐작할 길이 없고, 박근혜씨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하는 생각을 표현한 것뿐이다. 오히려 온건하고 균형 잡힌 객관적 시각의 견해가 표출된 것으로 읽힌다.

이런 이유 정도로 몸을 던져 사회에 항거하는 것이 옳다면, 이 사회는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은 우스운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틀렸다기보다는 설명이 안 된다. 이런 죽음으로 우리에게 그 잘난 민주주의가 다가온다면, 나는 그런 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피를 먹고 사는 민주주의”라는 흉측한 표현은 개인이 피를 흘려 민주주의를 먹여 살린다는 말로 들려 거부감이 든다. 아니 그런 민주주의는 내가 알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남종씨의 죽음으로 박근혜 씨를 공격하는 데 활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고인도 이를 원했고 적극 찬성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에 선뜻 동조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우리는 나 자신과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사는 형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아무런 정신적인 안전장치 없이 막다른 골목에 몰리거나 도달하면 자살을 선택할 수가 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원인을 비슷하게 짐작할 수가 있지만,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남인 경우에는 아주 충격적이고 명시적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에는 알 수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남종씨의 자살에 의한 죽음도 이런 외부자로서는 알 수 없는 죽음이라고 본다. 경제적인 스트레스, 정치사회적인 불쾌감, 삶의 의미의 결여, 주위 사람들과의 소통의 문제 등등 그 어느 것에서도 좋은 것을 찾아볼 수가 없고, 나 스스로도 의미와 희망을 만들어낼 힘이 없다고 할 때 사람은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많이 발생하는 산업재해,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에 의한 죽음에서도 그러한 부정적인 요인들이 알게 모르게 작용한다고 한다. 어찌 본다면 질병에 의해 수명을 크게 단축하는 것도 병균의 침입에 의한 외부요인 때문만이 아니라 내적인 선택의 메카니즘이 작동한 복합적인 결과일 것이다. 이런 것을 한마디로 불행이라고 한다. 병들어 죽는 것이 불행이기 이전에, 불행하기 때문에 때가 안 되어 병들어 죽는다고나 해야 할까?

인체 내에도 세포가 자살을 하는 기제가 있다고 한다. 이런 세포 자살이 있어서 인체 전체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메바 같은 미생물의 세계에서는 집단 전체를 위하여 자살을 선택하는 개체들이 다량으로 생겨나는 일이 반복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두려운 것은 인간 사회, 특히 한국사회라는 몸체가 그런 메카니즘에 의해 유지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궁핍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정기적인 집단적 광기와 전쟁은 그런 예가 된다. 전쟁 후에 사람이 많이 없어진 상황에서는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사회에 넘치고 인구가 빠르게 늘어난다.

자원이 제약된 상황에서 자아가 취약한 사람들의 작위적인 선택에 의해서든 무의식적인 영향에 의해서든 그들의 희생에 의해 사회가 존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분간의 거짓된 안녕을 보장받는다.

결국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세계사에서 현대 사회의 기점이 된 프랑스 혁명에서 내건 자유, 평등, 우애의 이념과 희생제물을 양산하는 사회구조는 양립할 수가 없다. 그런 사회는 야만사회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그런 희생자 중의 한 사람인 이남종씨는 희생을 계속 필요로 하고 사람 생명을 먹고 사는 사회의 수뇌부를 정면으로 지목했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씨의 사퇴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실마리는 될지라도 해결을 해 주는 것은 아니다. 더 직접적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에 FTA에 반대하여 분신 자살한 허세욱 선생, 그리고 쌍용 자동차의 수십 명의 자살한 해고노동자들이 죽음으로 고발하는 것은 모두 희생의 죽음을 양산하는 사회이다.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일정한 기간 어설픈 안녕을 누리는 좀더 안락한 사람들의 사회가 어떤 식으로든 달라져야만 한다. 그렇게 모두의 안녕과 평화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사회주의일 것이다. 이런 생각에 나는 동조하고 찬성한다.

창조경제의 의미

사기꾼 같은 사람이 창조를 말하면 그것은 없던 일을 있는 것처럼 날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는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누가 무엇을 창조한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영어에서 “create”라는 말이 나와도 그것을 창출한다거나 만든다고 번역하지 창조한다고는 좀처럼 번역하는 일이 없다. 어쨌건 ‘창조’라는 단어는 그 사용이 기피되는 단어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박근혜 씨가 “창조경제”를 들고 나왔을 때 말이 많았고 지금도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창조는 말 그대로 뭔가를 없던 것에서 있게 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구상단계에서 어디서 슬쩍 베끼거나 힌트를 얻더라도 구체적인 것은 당사자가 채워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100% 모방이 아닌 것은 창조라고 우길 수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의 원리를 모방하여 에너지나 자원이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기술을 만들어내는데, 그런 것을 bio-mimicry라고 한다. 그것도 당사자들이 양심적이라서 “생체모방”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창조라고 이름을 붙였을 것 같다.

인간은 자연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에 과학도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예술도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거나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재현하는 형상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머릿속에서 구상을 하는 것도 머릿속에서 잠을 잘 때 벌어지는 자연현상인 꿈에서 소재를 얻고 힌트를 얻는 것은 자연조차 관찰하지 않은 순수한 창작이겠지만, 역시 뭔가를 본 것이다. 예술가들을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창작하는 사람이기 전에 느끼는 사람들이고, 이는 뭔가를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어서, 그렇게 본다면 그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게 된다.

인간에게 창조적이거나 창의적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은 이처럼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서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거나 읽은 것을 참조하는 비중이 적은 특성을 말하고, 외부에서 받아들인 것을 자신이 깊숙이 느껴서 이를 자신의 것으로 재현하는 경우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경제활동에서는 정해진 레시피나 작업지시서에 따라 생산공정을 가동하는 것을 창조라고 할 수 없고, 목수가 수공업으로 가구를 만들 때에는 비록 스승한테서 배운 대로 하겠지만 창조에 가깝다고 할 수 있고, 도자기를 빚는 경우도 비슷하다.

그렇게 본다면 창조경제는 수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일 수 있다. 아니면 예술이나 문화상품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데 관련된 경제일 수도 있다.

나아가서 일반적인 제품 생산활동을 하는 데서도 머리로 궁리를 많이 하여 자원이나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덜 사용하는 방법을 개발해 내서 이런 것을 적용하는 데 많은 비중을 두는 경제를 말할 수 있다.

창조경제라는 개념의 함의를 분석할 때 전체적으로 본다면 조형이나 공학기술분야 같은 유형물의 분야에 초점이 두어져 있다. (만약에 금융분야에 이런 것이 적용된다면, 그것은 사기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창조적인 경제는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창조적으로 궁리와 고안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원재료를 직접 취급하는 현장의 노동자들이라야 가능하다. 농촌에서도 오랜 동안 생활한 농민이라야 창의적으로 물질을 순환하는 마을 경제를 만들 수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창조적인 경제는 노동자들에게 많은 자율성이 주어지고, 노동자들이 의사결정 권한에 다가가는 체제에서 가능하다. 노동이라는 것은 자연에서 얻은 원재료를 손으로 다루어서 쓸모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과 물질의 원리와 성질을 파악할 필요가 있고 숙련도 필요하다. 자연에는 항상 불규칙성이 있고 아직 파악이 안 된 사실들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나 농민은 예민한 촉각을 가지고서 관찰을 하고 또 얻어진 원재료의 불규칙성에 맞게 제품의 모양을 변형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동자와 공학기술자는 분리되어 있어서, 설계 부분은 미국 유학을 한 공학도가 하고, 생산시설을 가동하는 것은 기능공들이 하여 그들 간에 엄격한 계급의 구분이 있어 기능공들이 공학기사가 되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지 않나 생각된다. 사용하는 기술용어 자체도 다르다. 공학기사들은 대부분 영어로 된 용어를 사용하고 현장에서는 일본말 같은 것을 사용한다.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은 그래도 공학기술 용어를 자기 나라 말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창조경제를 하려면 공학기술 용어부터 한국말로 만들고, 현장의 노동자들이 내는 아이디어를 적용할 수 있게 작업장 내의 의사결정 구조와 위계질서가 바뀌어야 한다. 숫자와 설계도를 다루는 지식노동과 원재료를 다루는 육체노동이 적당히 겸해지고 통합되어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씨 정부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관료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창조적인 경제로 간다는 것은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미국식 산업문명을 바꿀 수도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노동집약적이고 에너지, 자원 저-소비적이고, 자본집약적이 아닌 경제를 건설하는 방향이면 좋을 것이다.

반대로 겉모양만 창조적인 경제라면, 그것은 겉포장을 화려하게 하여 소비자를 현혹하는 경제, 그래서 노력하고 땀 흘리는 일 없이 돈을 만들어내는 경제, 상응하는 일 없이 돈을 창조해 내는 경제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많은 금융상품들이 수리적인 기법을 가지고서 창조적인 경제를 만들어내는 듯했으나 이제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연에는 아직도 우리가 주목하지 못한 효율적인 디자인 원리가 많아서 태양 에너지와 흙의 양분으로 아름답고 건강한 생명경제를 이루는 동식물들의 모습이 많이 있다. 그런 것을 모방하는 것을 bio-mimicry라고 한다고 이미 말했지만, 이는 야외에서 일을 하고 자연을 잘 관찰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지식이다.

직접 원재료를 다루는 노동자의 지위가 높아지지 않으면 창조적인 경제는 허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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