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연구통신

제201403호 [통권 제178호]

2014년 1월 17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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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통화와 사회적 경제

P.-J. 프루동은 ≪신용과 유통의 조직, 그리고 사회문제의 해결≫(1848)이라는 소책자에서 국정화폐를 대체하는 일반화된 환어음 형태의 물품 교환권을 발행하는 은행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질서를 수립할 계획을 제시한다. 금(金)이나 국정 지폐 모두 권력독점을 하는 군주정에 걸 맞는 화폐 형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 화폐나 금의 독점권을 벗어나서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서로 신뢰(crédit)에 의해 약속을 하고, 이들 간에 계약에 의해 발행한 증서의 유통을 인민은행이라는 대안적 중앙은행이 일반적 교환권으로의 할인에 의해 도와준다는 개념이다.

그렇게 되면, 공식 화폐를 이용하지 않아서 GNP에 잡히지 않고서도 활발한 경제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국가의 독점적 화폐질서를 유지하는 공무원들, 시장에서 순간적인 가격차이로 돈을 버는 중개업자들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와 생산적인 경제주체들 간에 대안은행을 매개로 한 계약에 의해 거래가 가능하게 되어 오히려 생산과 소비가 더 활성화되고, 경기변동이나 불황의 위험성도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소비자들의 구매약속이 신용의 출발점이 되므로 국정화폐처럼 인플레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고, 판로의 대책이 없는 과잉생산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국내에 외국상품을 판매하는 수입업자도 국내 물품의 물품교환권으로 대금을 지급받아야 하기 때문에 무역수지의 균형화에도 기여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현실성이 없는 유토피아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행정의 중심지는 바로 그 대안적 중앙은행이 되고, 그 중앙은행의 수수료가 국가의 조세를 대신한다. 이는 신뢰성 있는 경제주체들 간의 교환과 거래의 계약관계로 국가질서를 다시 건설하자는 구상이고, 수만명이 가입하는 시범적인 대안은행이 그 출발점이 된다. 실제로 이런 구상에 의해 세워진 은행이 빠리에서 개점 두 달만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 국가 화폐를 매개로 하지 않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맹 회원들 간의 교환이 가능하게 하는 불특정 수취자에 대한 일반화된 물품지불명령서라는 증서의 발행, 이런 것들은 오늘날 대안화폐 또는 지역화폐라는 유사한 개념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프루동이 말하는 “신용”은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무슨 물건이나 서비스든지 내놓고 그 대상자로부터 물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지불명령서를 발행하여 이를 다른 물건을 사고 싶을 때 이용하는 것이다.

협동조합이라는 기업형태는 조합원들이 서로 고용관계에 있지 않고 평등하게 주인으로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협동적 회사이기도 하지만, 시장에서도 돈이 없는 소비자와 생산자들 간에 돈을 매개로 하지 않고 실물 대 실물로 믿고 거래하는 질서를 만든다는 의미에서 경쟁보다는 협동적인 경제질서를 만든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프루동이 그런 미래적인 대안적 경제 질서를 “사회적 경제”라고 부른 것이 사실이다. 어느 기업이든 시장점유율을 놓고 경쟁하는 것은 결국 독점을 궁극적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가입, 탈퇴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공연합회 형태의 회사를 주식회사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기까지 했다. 이런 회사형태에서는 독점의 지향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각국의 협동조합 법령이나 연합조직(association) 법령에서는 탈퇴의 자유까지는 엄격하게 보장이 되고 있지만, 가입의 자유, 즉 회원 문호 개방을 회사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물론 생협이라는 소비협동조합이나 신협 같은 곳은 실제로 그런 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이는 비영리이고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을 때 가능한 형태이다.

생산 분야의 회사에서도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다른 생계 대책 없이 특정한 회사에서 일하여 먹고 사는 사람들은 그 회사가 발전해서 성장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 장래가 불안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회사는 너무나도 앞날을 예측할 수가 없다. 게다가 ‘돈’이라는 독점적 권력수단을 휘두르는 국가와 자본의 입맛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사람들을 좋아하지, 경쟁을 피하고 협동과 평화를 추구하는 경제주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본다면 협동조합은 기초적인 생계수단에서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촌 같은 환경에서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그 이름을 많이 들어보았을 현대경제학의 창시자인 Léon Walras는 이와는 다른 협동조합 관(觀)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협동조합이라는 회사의 특징이 자본가로부터 독립된, 노동자들의 자주적 회사라는 데 있다고 보았다. 회사의 자본은 조합원들이 소액의 할부금 형태로 납부하며, 이렇게 자본조달에서 자주성을 달성하면서 다수 노동자들이 규모 있는 회사를 이루어서 시장에서 큰 회사들과 경쟁하고, 스스로가 배당의 형태로 자본가로서의 이윤을 얻는 것이 경제 민주주의라고 본 것이다. 즉, 그는 협동조합 운동은 하나의 대안 영리 기업 운동이며, 화폐를 매개로 한 시장교환 시스템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체제 내적인 운동이고, 사회적 경제를 건설한다거나 사회개혁을 하는 차원의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래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그에 의하면 협동조합 설립, 운영의 문제는 ‘사회적 경제’의 범위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 역시 금융과 자본의 횡포를 문제시했고, 노동자들의 경제적 독립성을 중시했으며, 이런 독립성을 확보한 기초에서 건강한 시장경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고 개인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의 영역이 된다. 물론, 그는 사회적 경제의 영역에서 토지재산의 공유화로 사람들의 조건의 평등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시장 바깥에서 공정한 경쟁을 위한 제도적 조건을 만들어 주는 별개의 문제로 다루어진다.

이런 점이 프루동의 사회적 경제와 다르다. 즉 당시의 프랑스 사회에서의 금융자본의 횡포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해결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프루동은 국가와 시장을 대체하는 해결책을 추구했고, 왈라스는 노동자 계층의 소액저축, 즉 소액출자에 의해 금융자본으로부터의 경제적 독립성 확보를 하도록 하는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국가와 자유시장의 기능을 인정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법령에서, 그리고 협동조합 추진주체들 중에서도 조합원들이 소액 할부금으로 자본을 점진적으로 형성하는 측면도 강조되지 않거나 무시하고 있고, 외부로부터의 금융조달에서는 국가나 기존의 제도권 협동조합 금융권에 어떤 식이든 시혜를 기대하고 있으며, 지역대안 화폐와 같은 국정화폐를 통하지 않는 실물 중심의 거래 가능성에도 주목하지 않고 있다. 협동조합들을 이어주는 신용기구가 만들어진다면 이는 지역대안화폐와 같은 대안적 수단에 의한 교환과 경제활동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제도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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