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연구통신

제201408호 [통권 제183호]

2014년 2월 28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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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과 인간에 대한 예의

사람이 물건을 구입하거나 어디서든지 얻어서 들여놓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디서 나무토막을 하나 주워오더라도 그런 생각이 들고, 전자제품을 사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새로 태어나는 경우, 어떤 사람이 같은 일터에 새 식구로 들어오는 경우 모두 우리는 축하를 하고 경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상상을 하게 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활용가치가 있는 소재나 물건이 들어오게 될 때 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세계나 영역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나므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이것저것 사들이거나 주워 모으는 습성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 그렇고, 아마도 고물을 수집하는 고물이나 골동품상 같은 사람들이 그런 천성을 기초로 할 것입니다.

물건이나 나무토막과 같은 재료는 새로운 창작을 위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그 상상력은 어느 정도의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과 연결이 된다고 할 수 있는데, 새로운 사람이 생길 경우에는 그 사람과 관계를 어떻게 해 나가느냐에 따라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거나 전혀 생각하지 못하던 방향으로 그 사람이 작용을 하게 될 수가 있다는 점에서 맞이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훨씬 불확실하고 인내력을 요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건이나 사람을 버리는 것도 새로운 물건이나 사람을 맞아들여서 이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심리에서는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거나 들어올 때 통과의례를 거치는 관습에서처럼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거나 얻어 들여서 장만할 때에도 그런 통과의례를 해야 한다는 의식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비록 장난으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새로 산 신발은 밟아 준다든지, 옷을 산 것을 보면 착복식(着服式)을 해야 한다고 친구들이 주장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물건이 내 몸의 일부, 즉 분신(分身)이 되어 내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게 된다는 의식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인간으로서의 예(禮)를 강조할 필요도 없이 그런 통과의례가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반면에 물건이나 사람을 여읠 경우에는 모든 절차를 간소화시키는 것이 현대 사회의 경향입니다. 옛날 국어교과서에 등장했던 부러진 바늘을 슬퍼하는 조침문(弔針文) 같은 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문학의 소재로 되기 힘들지 않나 생각됩니다. 실제로 그런 정서를 가진 여성이 희귀하기 때문에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가 힘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회사에서 사람을 내보낼 때도 냉정하게 내보내는 일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큰 특징은 버리는 것을 잘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슘페터 같은 이는 이를 “창조적인 파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사람을 내보내는 데 애석한 마음을 담아서 어떤 식으로라도 예식(禮式)을 치르고 싶어하는 것이 동료들의 심정이겠지만 이런 심정을 제대로 반영하여 사람을 떠나 보내기보다는 형식적인 인사치레로 마무리한다고 하는 것이 더 현실에 부합하는 것이겠습니다. 사람과 사별할 때의 의례(儀禮)라도 그런 형식적인 것이 안 되기를 우리 스스로 다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물건을 버릴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마음을 모질게 먹고 단호하게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해 버리는 것이 현명한 주부의 지혜가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물건이나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인간에 대한 예의,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강조되어야 할 대목이 실제로 되는 것 같습니다. 못 쓰게 된 물건을 처리할 때는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새것을 사는 것보다 고쳐서 쓰는 것이 비록 돈이 더 들지라도 고쳐서 쓰는 쪽을 택할 수도 있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정 버려야 할 상황이 되면 잘 재활용이 되도록 세심하게 분리 배출을 해서 좋은 용도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그 물건을 새로 들여올 때 기뻐했던 사람이 가져야 할 물건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예의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심성이 익숙해진다면, 우리는 물건을 바라보고 사용하는 중에 가지는 마음가짐도 달라질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청정(淸淨)한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인연을 소중히 하는 것이 전제조건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제 오늘 연구소의 방을 옮기면서 많은 물건들, 책들, 그리고 새로운 방과 지금까지 몸담아 왔던 방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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