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연구소 설립취지

 

인류는 태곳적부터 불과 2백년 전까지 생태계와 공존하고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물질이 자연에서 순환하는 순환적인 경제를 주된 삶의 형태로 하여 살아 왔다.

서유럽에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동력기계의 사용으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전세계를 시장으로 하여 발달하면서 자연생태계와 곳곳의 지역 주민들에게 이 세상은 가혹하고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하였다.

조선반도와 인민이 직접적 피해자가 된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개척은 자원수탈에 주된 목적이 있었고 자원의 채취는 생태계의 건강성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자원의 획득은 인간사회의 평화를 깨뜨리고 전쟁과 살상, 노예화를 가져오는 주 원인인 동시에 인간과 생태계의 평화로운 공존에 위협을 가하는 주된 원인이 된다.

이러한 제국주의 침탈의 종식 후에도 조선반도에는 그 결과로 분단의 철책선이 그어지고, 조선민족은 같은 땅을 오랜 세월 살아온 동족간에 서로 총과 칼로 죽이는 부끄러운 전쟁의 참상을 연출하여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비롯된 산업문명이 인간을 얼마나 타락시킬 수 있는지를 전세계에 과시했다.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미 제국주의의 잔악한 실상을 체험한 이북의 동포들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침투를 막고자 외부세계와 높은 담을 쌓고 현대의 민주사회의 가치 기준에 미달하는 폐쇄적 통제적 질서를 유지하고 있고, 이남에서는 물질 균형의 기초가 부실한 성장일변도의 물량 중심 경제운용으로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가 심각하게 되었고, 인구의 대도시 집중으로 에너지 고소비, 자원낭비의 생활습관이 자리잡아 정신적 신체적으로 인간의 건강한 생존능력이 파괴된 상태가 심각하다.

그러므로 자원쟁탈을 위한 침략전쟁이 지속되고 있고 생태계의 지속성이 심각하게 위협 받고 있는 지금, 우리 한반도에서는 자원을 절약하고 삶의 터전을 같이 하는 같은 지역, 같은 민족간에 자원 순환 체계를 만들어 새로운 자원의 채취와 경제 내로의 투입을 최소화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폐기물의 처분을 최소화하는 순환하는 지역경제와 자립적인 민족경제의 건설을 위한 연구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순환경제 연구소를 세운다.

 

이 순환경제연구소는 순환경제사회를 위한 기초이론을 연구하고 순환경제 사상을 보급하며 민주적 정치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환경정책 수립과 동북아시아의 평화-순환-탈핵 공동체에 의한 연방제적 통합과 지역단위의 지속 가능한 순환경제 형성을 위한 기여를 하려고 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사업을 하려고 한다.

 

1. 지속 가능한 균형 잡힌 경제사회의 사상과 이론을 정립

2. 핵에너지와 폐기물이 없는 순환형 경제사회 시스템의 구축

3. 생태계와 인간사회의 평화와 다양성 속의 공존을 추구하는 생명문화, 교육, 윤리 연구

4. 인간사회와 생태계의 공존공영을 위한 건전기술, 저에너지 소비기술, 자원순환 기술의 발전을 위한 연구

5. 경제 민주주의, 협동조합, 협동농장, 지역자치에 기초를 둔 연방제 국가체제 연구

 

이 연구소는 중장기적으로 농촌에 연구소를 두고 일터와 쉼터를 같이 하는 공동체 형태로 존속하려고 한다.

 

 

생태 사회주의 선언

세계는 기후변화로 열병을 앓고 있으며, 그 질병은 자본주의 발전모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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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2007 9


인류의 선택

인류는 오늘날 생태사회주의냐 아니면 야만이냐의 엄중한 선택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인류와 자연 모두를 착취하는 기생적 체제인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것의 유일한 동력은 이윤을 향한 절대명령, 그래서 불변하는 성장의 필요성이다. 그것은 불필요한 제품들을 헤프게 만들어내어 환경에 있는 한정된 자원을 남용하고 독성물질과 오염요소들만을 환경에 되돌려준다. 자본주의 하에서 성공의 유일한 척도는 매일, 매주일, 매년 얼마나 많은 양을 판매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는 인간과 자연 모두에 직접적으로 해가 되는 제품과 질병을 퍼뜨리지 않고는 생산이 안 되는 상품도 포함된다. 또 이 과정에서 우리가 숨쉬는 산소를 생산하는 삼림은 파괴되고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우리의 물, 공기, 흙을 산업폐기물 처분을 위한 하수도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성장 필요는 개별기업에서부터 체제 전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에서 존재한다. 주식회사들의 꺼질 줄 모르는 허기는 천연자원, 값싼 노동, 새로운 시장에 더 가까이 접근할 길을 찾는 제국주의적 팽창에 의해 촉진된다. 자본주의는 항상 생태 파괴적이었지만 우리가 사는 동안 땅에 대한 이러한 침탈은 가속화되어 왔다. 양적 변화는 질적 전환으로 넘어가고 있으며, 세상은 재앙의 나락으로 떨어질 모서리에 놓여 있다. 점차 더 많은 과학 연구결과들이 약간의 온도 상승만으로 돌이킬 수 없는 탈주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여러 경로를 찾아냈다. 그린란드의 방하가 급속히 녹는다든지, 영구동토 지대와 해저에 매장된 메탄가스의 분출 같은 것이 파국적인 기후변화를 불가피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냥 놔두면 지구온난화는 인간과 동식물의 생명을 초토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작물 수확량은 급감하여 대량 기근으로 이어질 것이다. 수억의 사람들이 어떤 지역에서는 기근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바닷물 수위 상승으로 소개될 것이다. 혼돈적인 예측 불가능한 날씨가 오히려 통상적인 것이 될 것이다. 공기, , 흙은 독성을 띨 것이다. 말라리아, 콜레라 그리고 그보다 더 치명적인 질병들이 모든 사회의 극빈층과 가장 취약한 계층을 덮칠 것이다.
생태위기의 영향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에 의해 이미 삶이 황폐화된 자들이 가장 극심하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든 토착민들이 특히 취약하다.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는 빈자들에 대한 부자들의 공격행위를 이룬다.
이윤 증대의 채워지지 않는 필요에서 비롯된 생태적 초토화는 자본주의의 우연한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그 체제의 DNA에 내재하며 개혁으로 없앨 수 없다. 이윤 지향적 생산은 투자 의사결정에서 단기만을 고려하며 환경의 장기적 건강과 안정성을 고려하지 못한다. 무한대의 경제적 팽창은 유한하고 약한 생태계와 양립이 불가능하지만,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성장에 한계를 두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 지속적 팽창의 필요성은 "지속 가능한 발전"의 이름으로 부과될지도 모르는 어떠한 한계도 무력화시킨다. 그래서 선천적으로 불안정한 자본주의 체제는 그 자신의 활동을 규제하지 못하며, 더구나 그 혼돈적이고 기생적인 성장으로 초래된 위기는 극복할 수 없다. 극복하려고 한다면 축적에 제한을 두어야 하는데 이는 성장하지 못하겠거든 죽으라고 하는 규칙에 목을 맨 체제에는 용납이 안 되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지배적 사회질서인 상태로 있다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참을 수 없는 기후 조건, 사회적 위기의 심화, 그리고 계급 지배의 지극히 야만적 형태의 편만이다. 제국주의 열강은 세계의 감소해 가는 자원을 계속 지배하기 위하여 서로간에 그리고 남반구와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인류의 생활은 지속되지 못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변화전략들


대기중의 이산화탄소의 사정 없는 증가의 결과로 나타나는 지구온난화의 위기를 포함한 생태적 파멸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들은 허다하게 제안된 바 있다. 이 전략들 대부분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전체 지구의 지배적인 시스템인 자본주의에 의하여 자본주의를 위해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생태위기에 책임 있는 전체 지구의 지배적 시스템이 이 위기에 관한 토론의 의제를 설정하기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본은 대기중의 이산화탄소 생산 수단을 지배하는 것과 같이 지식의 생산 수단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 부리는 정치인, 관료, 경제학자, 교수들은 끊임 없이 제안들을 쏟아놓고 있다. 이는 모두 세계의 생태학적 피해가 시장 메카니즘의 중단 없이 그리고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축적 시스템의 중단 없이 복구될 수 있다는 논제를 변형한 것들이다.
그러나 사람은 지구의 온전성과 자본주의의 이윤추구라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나는 포기되어야 하며, 역사는 대부분의 정책 수립자들의 충성심에 별 의문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태적 파국으로 미끄러져 가는 것을 막을 능력이 기성의 수단들에 있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의심하는 것이 전적으로 옳다.
진실로 겉포장의 속을 보게 되면, 지난 35년간의 개혁은 참담한 실패였다. 간혹 개선은 생겨나지만 시스템의 무자비한 팽창과 그 생산의 혼돈적 성격에 의해 불가피하게 압도되고 쓸려 나간다.
그 실패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있다: 21세기의 처음 4년간 지구의 탄소배출량은 1990년대에 비해 연간 거의 세 배에 달했다. 1997년도에 교토 협약이 있었는데도 그렇다.
교토 체제는 두 장치를 사용한다: 배출량의 일정한 삭감을 달성하기 위해 배출권을 거래한다는 "총량 및 거래"(Cap and Trade) 시스템, 그리고 고도로 산업화된 나라들의 배출량을 상쇄하기 위해 이른바 청정 개발 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라고 하는 남반구에서의 투자사업들이 그것이다. 이 수단들은 모두 시장 메카니즘에 의존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킨 당사자들의 통제권 하에 놓인 상품이 된다. 오염자들은 그들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도록 강제를 받지 않으며,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탄소 시장을 조정하도록 그들의 금권을 사용할 것을 허락받았다. 이에는 훨씬 더 탄소에 기반을 둔 연료를 찾아내려는, 환경을 초토화시키는 탐사활동이 포함된다. 순응하는 나라들에 의해 발행될 수 있는 배출권의 양에 대한 제한도 없다.
결과에 대한 입증과 평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교토 체제는 배출량을 통제할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온갖 편법과 사기의 온상을 제공한다. 월스트리스트저널도 2007 3월에 언급한 것처럼 배출권거래는 몇몇 대기업에게 돈이 되겠지만, 이 놀음이 지구온난화에 대해 의미가 있으리라고는 행여나 믿지 말라.
2007
년도의 발리 기후 회의는 앞으로의 기간에 훨씬 더 큰 오남용을 위한 길을 열었다. 발리회의는 최고의 기후과학이 내놓은 급격한 탄소 감축 목표(2050년까지 90%)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 세계은행에 그 과정에 대한 처결권을 넘김으로써 지구 남반구의 민중들을 자본의 처결에 운명을 맡기도록 포기하였고 탄소 오염의 희석화를 더 쉽게 만들었다.
우리 인류의 미래를 긍정하고 지속하려면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며, 모든 개별 투쟁들은 자본 자체에 대항한 더 큰 투쟁에 힘을 모아야 한다. 이 거대한 투쟁은 단지 부정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것에만 머무를 수 없다. 그것은 다른 종류의 사회를 선포하고 건설해야 한다. 이는 생태사회주의이다.
생태사회주의 운동은 구체적으로는 지구온난화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생태계 파괴의 재앙적 과정을 중지시키고 뒤집으며,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급진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생태사회주의는 사회정의와 생태적 균형의 비화폐적 가치에 기초를 둔 전환된 경제를 바탕으로 한다. 자본주의의 시장 생태학과 생산력 중심주의적인 사회주의 모두를 비판한다. 지구의 균형과 한계를 무시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태적 민주적 틀 안에서 사회주의의 길과 목적지를 다시 정의한다.
생태사회주의는 혁명적 사회변혁을 필요로 하며 이는 성장에 제한을 두는 것 경제적 척도를 양적인 것에서 질적인 것으로 근본적으로 옮기고 또 교환가치 대신에 사용가치를 강조해서 필요를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목표는 경제적 영역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하여 사회로 하여금 그 투자와 생산의 목표를 집단적으로 정의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생산 수단을 집단화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집단적 의사결정과 생산의 집단적 소유만이 우리의 사회 시스템과 자연 시스템의 균형과 지속성에 필요한 장기적 전망을 제공할 수 있다.
생산력 중심주의의 거부와 경제적 척도를 양적인 것으로부터 질적인 것으로 옮기는 것은 생산과 경제활동의 성격 일반을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사, 육아, 간호, 아동 및 성인교육, 예술과 같은 필수적인 창조적이고 비생산적인 재생산적 인간 활동은 생태사회주의 경제에서 핵심적 가치를 갖는다.
맑은 공기와 물, 비옥한 토양, 그리고 화학물질을 쓰지 않는 식품과 재생 가능한 오염성이 없는 에너지원을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생태사회주의에서 수호되는 기초적인 인간의 자연권이 된다. 지방, 지역, 국가 및 국제적 수준에서의 집단적 의사결정은 "독재적"이 아니라 공동체적 자유와 책임을 사회가 지니고 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뜻한다. 이 의사결정의 자유는 성장 지향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의 소외시키는 경제 법칙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룬다.
인간과 생태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구 온난화 및 그밖의 위험들을 피하려면, 공업과 농업의 전체 업종들이 폐업하거나 축소되거나 구조 조정되어야 하며 다른 업종들은 개발이 되어야 하며, 그러는 가운데서도 모두에게 완전고용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한 급진적 변혁은 생산수단의 집단적 통제와 생산 및 교환의 민주적인 계획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투자와 기술개발에 대한 민주적 의사결정은 사회와 자연의 공동선의 장기적 지평을 위해 자본주의 기업, 투자자 및 은행에 의한 통제를 대체해야 한다.
인간 사회의 가장 심한 억압을 받는 인자들인 빈민과 원주민들이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전통들을 복원하고 자본주의 체제가 귀를 기울일 수 없는 자들에게 발언권을 주도록 생태사회주의 혁명에 전폭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지구 남반구의 민중과 빈민 일반은 자본주의적 파괴의 첫째 가는 희생자들이므로 그들의 투쟁과 요구는 창출되어야 할 생태적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의 윤곽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 평등은 생태사회주의에 필요요소이다. 여성운동은 자본주의적 억압에 대한 가장 활동적이고 목소리가 큰 반대자에 속해 왔다. 생태사회주의적 혁명적 변화의 그밖의 잠재적 인자들도 모든 사회에 존재한다.
그러한 과정은 인구 대다수의 생태사회주의 프로그램에 대한 적극적 지지에 기초한 사회 정치적 구조의 혁명적 변혁 없이는 시작될 수 없다. 근로자, 농민, 땅 없는 자, 고용자의 사회 정의를 위한 노동 투쟁은 환경 정의를 위한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사회적 생태적으로 착취적 오염적이어서 자연과 노동 모두에게 적이 된다.

생태 사회주의는 다음의 사항들에서 혁명적 변혁을 제안한다:

1.
에너지 시스템은 탄소기반 연료와 바이오연료를 공동체 통제하의 청정 에너지원인 풍력, 지열, 조력 그리고 특히 태양광으로 대체
2.
교통 시스템은 민간인의 트럭과 자동차 사용을 급격히 축소하여 무료이고 효율적인 대중교통으로 대체
3.
낭비와 고질적인 진부화, 경쟁, 오염에 바탕을 둔 생산, 소비, 건축의 현행 양태를 지속 가능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재화만 생산하는 것으로 그리고 녹색 건축을 개발하는 것으로 대체
4.
식품의 생산과 배송은 가능한 한 지방의 식품 주권을 수호하고 오염을 야기하는 산업형 영농산업을 퇴출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생태계를 창조하며 토양의 비옥성을 갱신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는 것으로 변혁

녹색 사회주의의 목표 실현을 향하여 이론작업을 하고 실천하는 것은 우리가 또한 바로 지금 구체적이고 시급한 개혁을 위해 투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깨끗한 자본주의에 대한 어떤 환상도 가지지 않는 우리는 정부든, 기업이든 국제기구든 권력체들에 약간의 기초적이지만 필수적인 즉시적 변혁을 강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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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배출의 급격한 그리고 강제에 의한 감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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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에너지원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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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범위한 무료 대중교통 체계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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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을 기차로 점진적으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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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 제거 프로그램의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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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에너지, 전비지출의 제거

이들 요구 그리고 이와 유사한 요구들은 그로발 저스티스 운동과 세계사회포럼의 핵심 의제에 있었으며, 이 두 운동은 1999년 시애틀 이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한 공동의 투쟁에서 사회 운동과 환경 운동의 수렴을 촉진해 왔다.
환경의 초토화는 컨퍼런스 룸과 조약체결로 중지되지는 않는다. 대중의 행동만이 결실을 이룰 수 있다. 도시와 농촌의 노동자들, 지구 남반구 민중과 원주민들이 도처에서 환경적 사회적 불의에 대항하는 이 투쟁의 전선에 서서, 착취와 오염을 일삼는 다국적 기업, 독성 물질을 뿌려대고 땅에 대한 권리를 빼앗는 농작물산업, 유전자 변형 종자의 침입, 현재의 식량 위기를 악화시킬 뿐인 바이오연료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 우리는 이 사회운동 환경운동을 더욱 진척시키며, 북반구와 남반구의 반자본주의 생태 운동 간의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이 생태사회주의 선언은 행동 요청 격문이다. 공고화된 지배계급은 강력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는 매일같이 재정적 이념적으로 점점더 파산상태에 처하여 그것이 야기하는 경제적, 생태적, 사회적 위기, 식량위기 기타 다른 위기들을 극복할 능력이 없다. 지방, 지역 및 국제적 모든 수준에서 우리는 사회적 생태적 정의에 토대를 둔 대안적 체제를 창조하기 위하여 투쟁할 것이다.

-2009년 브라질 벨렝 세계사회포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