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통신

제201418호 [통권 제193호] (구 순환경제연구통신)

2014년 5월 16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돌고돌아다살림 연구소

주소: 경기도 동안구 안흥대로 500. 서현빌딩 601호. 전화:070-7767-5510 팩스 031-717-5510

세월호의 문제

세월호 참사 후의 수습기간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지금 많은 전문가와 비평가들이 문제점과 대안을 쏟아내고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참혹한 사고를 일으킨 엉터리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가 될 것이다.

이 시기에 상층부는 권위를 잃고 수세에 몰려 있어 민주주의의 힘이 가장 강하게 작동한다.

민주주의의 힘은 법이나 정부의 규정과 관계 없이 시민의 자발적인 조직이나 개인의 힘이 운동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정부는 시민의 목소리를 잠재우려고 하며, 법으로 정해진 통로를 통한 의견만을 접수하려고 한다. 그렇게 접수된 의견은 일사불란한 위계질서를 통해서 다루어지고 대응된다. 그 어디에도 난상토론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오직 접수 -> 검토 -> 기안 -> 결재 -> 집행 -> 보도자료를 통한 공개나 홈페이지, 문서에 의한 답변이라는 판에 박힌 절차밖에 없다.

사무실 안에서 상급자는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있어도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얼굴을 붉히면서 대드는 일은 그가 그만두려는 경우가 아니면 상상할 수가 없다. 그것은 관료사회나 기업이나 학교나 연구소나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관행과 규정과 법을 뛰어넘고 어기지 않으면 세월호의 문제와 같은 문제는 해결될 수가 없다는 데 대해서 이른바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지금의 의사전달과 공유의 절차 자체가 갖는 위계성과 폐쇄성이 문제의 핵심부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절차 방법론으로는 체계적으로 완벽하게 노력을 해도 해결책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의 시스템에서 의사의 전달체계는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자신의 임명권자가 자신에게 명령을 하고 자신으로부터 보고를 받는다. 일단 자신의 임명권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임명권자는 사회나 국가보다는 자기 조직의 이해관계에 따라 의사결정을 할 수가 있고, 그 아래에 속한 하급자도 자신의 조직이 잘 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자신의 임명권자가 내리는 결정에 공적인 이유로 반대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관료조직이 상하간 공생관계가 생겨나게 된다. 이 조직체 내의 어디에서도 상하 없는 난상토론이 있을 수 없다.

조직원이 조직의 최상층부를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난상토론은 직업조직이나 기관이 아닌 자발적인 조직, 정당이나 종교단체, 시민단체 같은 곳에서나 가능하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그런 단체에 가입하여 함부로 발언을 할 수도 없다. 회사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어떤 형태가 보장되어야 하는가? 공무원의 신분보장 같은 것이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의 공무원의 행태를 본다면 그런 것은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할 수 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되어야 한다. 입법부와 행정부 간에는 상하관계가 없기 때문에 서로 논쟁이 가능하다. 공무원들에 대한 입법부의 감시도 필요하다. 그러나 입법부는 규모나 조직상 그렇게 충분한 감시역량을 갖기가 어렵다. 입법부의 역량이 강해지려면 시민들이 과외의 시간에 자발적으로 정당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다.

지금의 사회는 점점 더 분업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이제는 계통(系統: system)이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전문가의 자질을 의심받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다 보면 자기 소관의 일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섣불리 발언을 하기를 꺼리게 된다. 사람들이 신문이나 정보 매체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많은 소식을 접할 수가 있지만, 가족이나 친구들한테 말고는 자기가 사는 사회와 체제에 대해서 누구한테도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정치문제와 종교문제는 사적인 대화의 화제로도 올리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사회생활의 법칙이 된 것도 이와 관련이 된다.

그런데 본업과 관련하여 조직상의 위계를 초월하여 누구와 대등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하려면 그 조직 나아가 그 조직의 뒤에 있는 체제 자체에 대하여 송두리째로 뒤집어 보고 그에 대한 대안적인 조직과 체제의 질서를 상상할 수 있는 세계관이 배경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조직원 이전에 시민으로서의 양식과 자질의 문제인데, 이러한 바탕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신뢰가 전제되어야만 조직을 뛰어넘어 조직 자체를 뒤흔드는 격론을 할 수가 있다. 그 과정에서 하급자가 불편하게 만드는 의견으로 상급자의 속을 뒤집어놓아 불쾌하게 만드는 것도 있을 수 있고 또 그런 의견 개진이 허용이 될 수가 있다.

이러한 급진적인 사고와 문제 제기를 자기의 직업세계에서 할 수 있는 문화가 되어 있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직업 생활 바깥에서 꾸준한 학습과 연구, 그리고 자발적인 단체활동을 통한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당활동, 시민단체 활동, 노조활동 등이 그래서 중요하다. 인간은 직무에 종사하는 조직원이기 이전에 노동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고 완성해 가는 노동자이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갖는 정치적인 무슨 주의자(主義者)이고, 또 어떤 가치를 위해 생명을 걸 수도 있는 종교인이어야 하고 그럴 권리가 있다. 그런데 지금의 어떠한 영리, 비영리 조직, 공무원 조직에서도 자신의 세계관과 정치성향을 표출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아니 거의 법적으로 통제가 되고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에 대해서만 기안을 할 수 있고, 올라온 기안에 대해 정해진 규정과 관습에 따라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기능적이고 중립적인 업무 지침 자체는 사실은 중립적이지 않고 그 조직의 계속성과 확장성을 확보하는 데 암묵적으로 악용된다.

사회와 조직이 분업화되고 복잡해질수록 개인이 볼 수 있는 범위는 더욱 제한적이 되고, 그가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은 전체에 비해 극히 미미하게 되어 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사회가 복잡해져 갈수록 이 사회의 골간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게 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이런 사람들을 반사회적인 사람들로 낙인을 찍게 되면 그것은 사회의 기둥을 하나씩 뽑아내는 일과 무엇이 다를까?

직무와 관련해서는 그런 회의(懷疑)적인 의견을 표출할 자리가 전혀 없고, 진보적인 정당이나 반정부적인 시민단체에서만 그런 의견들이 표출되어 제한된 계층에게만 전달이 되기 때문에 사회가 곪아 망하는 길로 가고 있을 때 이에 대한 제동장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마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일 가운데서 체제 전체를 상대적으로 보고 의문시하는 좌파적 시각을 살려야 할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비판적으로 말하는 직원들이 윗사람들에게 미움을 사지 않을 수 있는 조직이 위기가 발생하게 되면 더 강점을 발휘할 수가 있다.

사회가 복잡해졌다고 해서 시스템이라는 것에 매몰되는 것을 당연시하고, 어려운 시스템 공학적인 술어만 늘어놓고 누구도 쉽게 말을 못 꺼내게 만드는 그런 조직은 자멸의 길로 달려가는 괴물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난호 보기

*수신을 원하지 않는 분은 sngmoo@cycleconomy.org로 요청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