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통신

제202011호 [통권 제224호]

2020년 7월 17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 연구소

주소: 서울시 중구 수표로 43 수정빌딩 302호. 전화:070-7767-5510

 7월 14일의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관하여

지난 7월 14일에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관계부처 합동 문서와 발표자료, 보도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두 달 이내의 짧은 기간 동안 만든 자료라는 것을 k-방역 성과 등을 발전시킨다는 내용에서 알 수 있었다.

뉴딜에서 딜(DEAL)은 디지털(Digital)의 D, 환경(Env)과 에너지(Ener)의 E, A는 그리고 (&), L은 노동(Labor)에서 나온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문서는 형식면에서 남한 정부의 행정 문서가 지금까지 도달한 최고의 양식을 선보이고 있다. 슬라이드 형태의 발표자료도 마찬가지다. (보도자료에는 관련 공무원들의 전화번호만 나열되어 있다)

한국판 뉴딜을 요약하자면, 디지털이라고 하는 정보통신기술을 기초로 하여 신재생 에너지를 포함한 친환경산업을 발달시키고, 노동과 사회복지, 의료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두에 서겠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이런 계획 문서는 사실 매년 산업통상자원부 같은 곳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온다. 그런 문서의 초안을 작성해 본 경험을 가진 연구 컨설팅 기관의 사람들도 많다. 이런 문서를 잘 작성하여 멋진 발표를 하고 칭찬을 받으면 최고로 유능한 공무원이 되고 이런 것을 초안을 잘 잡아 주는 연구원들은 최고로 유능한 연구자로 평가를 받게 된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행정과 정책의 모든 과정에서 출발점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에 공을 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이 문서 자체에서 이 계획이 현 단계의 정황에 대한 심원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며, 코로나 이후의 시류에 편승하여 외래어를 이리저리 변형하여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작명(作名)을 시도한 습작 수준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당연히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디지털, 환경, 에너지, 노동, 복지 종목들을 가지고서 고도의 편집과 포장을 한 것뿐이다.

계획기간은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5년간의 짧은 기간으로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5년의 중단기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바뀌지 않고 계획으로서 유효할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든다. 녹색성장이 4대강 개발, 핵발전소를 기초로 삼고 녹색으로 포장된 환경산업의 해외진출을 목표로 했다면, 한국판 뉴딜은 시대를 반영하여 비대면 의료, 복지 같은 것이 추가되었을 뿐 기본 철학에서 달라진 바가 없다.

그 기본 철학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빨리 캣취해서 시장에 잘 보이고, 유망한 분야를 발굴하여 우선 정부 자금을 집어넣어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는 것이다. 계획을 입안하는 담당자들은 멋진 그림을 그려서 상관에게 잘 보이고, 상관은 VIP라는 대통령에게 잘 보이고, 대통령은 금융을 손에 쥔 투자자들, 즉 시장에 잘 보이고, 일자리 증가 수를 보여주어 언론과 유권자들에게 잘 보이는 것이 기본 철학인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전제이지만, 그런 것밖에 목표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친환경 산업과 정책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게 트렌드이기 때문인 것이다. 계획에서는 단지 그 트렌드를 반영하여 멋진 용어를 만들어내어 주목을 받으려고 노력했다.

코로나 이후에 달라지는 것은 ‘비대면’이란다. 나는 이것이 국가의 국정철학일 수 없다고 본다.

지금이 어떤 시기인지에 대한 진단의 시도가 있어야 된다. 그런데 종합계획에서는 OECD 통계와 뉴욕대 교수를 인용하는 것으로 가름하고 있다.

코로나는 적어도 인류 역사에서 인간에게 이용과 파괴만 당하던 자연이 시장질서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고, 수백 년간 진화해 온 자본주의의 발전논리에 강력한 도전이 되고 있다. 앞으로 기후의 변화도 다른 전염병의 발생과의 협공으로 자본주의의 손과 발을 묶어놓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환경’이란 말이 중요한 것은, ‘환경’을 파헤쳐서 개발하여 이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환경이 서로 다 살아 있는 존재들이고 존중을 받아야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가 가르쳐 준 것은 자연환경이 인간에게 당하기만 하는 피동적 존재가 아니며, 인간에게 강력하게 반응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경제의 운용과 관련된 국정의 방향을 제시하는 종합계획에서는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 생활의 기본을 재검토하는 것이 우선이다. 윗사람들의 눈치를 잘 보고, 세계 뉴스를 검색하는 데 그치는 공무원들에게 그런 시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도 여러 실무자들이 준비해 준 것을 종합하는 것 이상으로 철학을 제시하는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사유재산으로서의 부의 축적이 경제활동의 동기가 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시대가 의문시되고 있다.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 화려한 용어가 국정 문서에 들어가야 할 시대는 아니다. 지구상에서 그리고 한반도에서 인간의 생존 조건에 대해서 기초부터 재검토를 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그런 계획을 두 달 만에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빠른 경기부양을 위해 이번과 같은 종합계획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장기적인 진단과 미래의 방향을 위하여 오랫동안 연구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정부에서 이런 과정을 진행하는 것이 경제에 신호를 줄 것이고, 많은 변화를 촉발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식자층은 미국, 일본, 유럽 등과 같이 큰 포석으로 제국(帝國)을 경영하던 나라들에서 생산된 지식과 역사적 경험에 익숙하여, 늘 시류에 편승하여 눈앞에 닥친 일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한국의 행정기구 종사자들의 행태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데 익숙해 있다. 언제까지나 그런 구도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국들의 틈새, 서방과 동방의 변경에서 한국 사회가 더 깊은 사고와 멀리 보는 시각으로 지금 필요한 명제를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합계획을 집어치우고 다시 그런 일을 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 분명하므로 우리나라의 전통에 따라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저번 호 보기 www.cycleconomy.org/doldari2009.htm  

지난호 모두 보기 www.cycleconomy.org/dolletter.htm

*메일수신을 원하는 분은 sngmoo@cycleconomy.org로 요청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