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통신

제202014호 [통권 제227호]

2020년 10월 2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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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명으로의 전환과 종교

1.    믿음

동양에는 아브라함의 믿음, 바울로의 믿음, 루터의 믿음 같은 의미의 믿음 개념이 없다. 동양의 유학에서 믿음은 평등한 인격 간의 신뢰 관계를 말한다. 기독교가 아브라함, 바울로, 루터의 믿음을 기초로 한다면, 그런 기독교는 동양인에게는 이질적인 것이고, 그런 믿음이란 개념이 문화적으로 뿌리를 내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마도 유목민족들에게는 인간과 양과 같은 가축 간의 관계, 일방적인 관계에서 나온 가축의 목자에 대한 믿음 개념이 발달된 것 같지만, 우리가 보기에 이를 인간관계나 신인관계에 적용시키는 것은 아주 혐오스럽다. 가축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한쪽이 다른 쪽을 잘 보살펴 주더라도 이는 잘 이용해 먹고, 결국 잡아먹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근원적인 거짓이 숨겨져 있다. 아니, 아마도 바울로가 본래 그런 것이 아닌 아브라함의 믿음을 치우치게 해석했고, 루터가 바울로의 생각을 더 치우치게 해석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즉,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라 동양적인 의미에서의 신(信)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굳이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관계를 믿음이라 부른다면, 우리 동양의 전통에서는 그것은 신과 인간 사이의 신뢰와 신의를 말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두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어지간히 실수와 오류를 저질러도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고,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상당히 관대한 인내의 시간이 있다. 신의 부작위나 횡포에도 신뢰하는 인간은 즉각 반발하지 않는다. 인간의 탈선과 범죄에도 신은 즉각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만큼 긴 시간의 신뢰가 쌓여 있지 않다면, 또는 강렬한 존재의 인정 순간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러한 동양의 믿음에는 거짓이 있을 수 없다. 투명한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관계다. 그러나 한쪽편이 달라졌다면 문제가 다르다. 신이 달라지든, 인간이 달라지든 상대방이 다른 존재가 되었다면, 그 신뢰관계는 깨어지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신(信 śraddhā)이 마음을 청정하게 함을 뜻한다. 투명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자신에게도 거짓이 없고, 그 투명한 마음을 상대방과의 관계에서도 개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신뢰가 깨지는 과정

신과 인간의 신뢰관계는 자연의 순환질서가 깨어지는 것으로 보이면서 의문시되게 된다. 자연의 순환질서와 사계절의 변화에 대한 신뢰는 신에 대한 신뢰인데, 이것이 의문시 되고, 그 원인은 인간이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발달시켜 왔기 때문인 것으로, 즉 신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렸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제 신이 인간을 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운 상황이 되었는데, 그러기 전에 인간이 자연 속에서의 삶의 질서를 무시하고 욕심을 무한히 키우며 살아온 행동이 있었다.

인간 집단의 출현 후 수십만 년의 신뢰관계가 수백년 간의 인간의 난동으로 금이 가게 되었다. 마르틴 루터의 맹목적 일방적 믿음 개념이 전세계를 석권하는 과정이 신과 인간 사이의 신뢰관계가 깨어지는 과정과 일치하는 것 같다.

3. 유위와 무위의 충돌

동양에서는 공자가 자연의 순환질서를 따라 주역(周易)이라는 상징체계를 완성하고 유감스럽게도 그로부터 유교라는 차별의 문명이 완성되었다. 노자, 장자는 선사 시대 수십만 년의 자연적인 삶의 질서의 입장에서 공자와 그 제자들에 의하여 문자화된 도덕체계의 허구성을 드러냈다. 이는 지금의 사회, 곧 인간과 대자연의 신뢰관계가 깨어진 징조가 나타나는 현시점에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충돌이다. 유위(有爲)의 문명의 파탄이 눈앞에 펼쳐지려고 하니 무위(無爲)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동기가 생긴다.

4.  신뢰의 회복

보통 사람들은 이와 같은 자연, 곧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틀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감각을 가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크고 깨끗한 마음과 눈을 가진 사람이라야 이를 파악할 수가 있다. 성인(聖人)은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과연 인간은 대자연과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인간이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면 혹시 가능할까? 그것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인간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대자연과의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의 인간다운 본래 모습을 어디서 어떻게 찾을까? 예수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로 나가서 40일간을 지냈다고 한다. 광야는 황무지이고 대자연이다. 말하자면 예수는 인간다운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광야로 나갔다. <유토피아>라는 말이 있다. 이는 no place, 곧 아무데도 없는 땅이란 말이 아니다. 이는 오랫동안 잘못 알려져 온 뜻이다. 그것은 인적이 드문 곳, 황무지라는 뜻이다. 잘못된 인간 문명에서 잘못 자리 잡힌 습관과 관념을 알아차리고 고칠 기회를 얻으려면, 인간이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과 마주하여 새로 소통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만 한다.

5. 종교의 자리

종교는 더 이상 특정 문화와 문명, 역사에서 생성, 발전되어 온 특정 종교로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같은 패턴의 정화(淨化)와 회복(回復), 갱생(更生)의 과정에서 보아야 한다. 유태인 예수는 우리와 상관이 없고 광야, 곧 대자연에서 새로이 태어난 예수가 우리의 본보기가 된다. 샤카국의 왕자 석가는 우리와 상관이 없고, 차별과 위계의 문명을 탈출하여 숲 속에서 목숨을 걸고 생명의 질문과 씨름한 석가가 우리의 본보기가 된다.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기존의 종교로서의 기독교 같은 일개 종교를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어쩌면 각자가 여러 선현들을 참고로 하여 ‘나 자신만의 종교’를 만들어 가지고서 지금의 문명과 대결해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6.  사회적 조건

대자연과의 신뢰관계를 가진 본래 인간의 회복이란 대명제를 위해 나 자신의 인간 회복이 중요할 뿐 아니라 만인이 그럴 가능성을 가지도록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며, 문명사회의 차별과 폭력의 습관과 관습을 버릴 수 있는 노동과 사회의 제반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생산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거대한 폭력을 전제로 하며, 이에 참여하여 일하는 사람들의 삶에서는 일상적인 폭력이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된다. 이러한 폭력은 계급 차별적 위계질서를 통해서 합법화된다. 이러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사람은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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