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통신

제202102호 [통권 제232호]

2021년 2월 5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 연구소

주소: 서울시 중구 수표로 43 수정빌딩 302호. 전화:070-7767-5510

레옹 발라(Léon Walras)의 경제표

레옹 발라(Léon Walras, 1834-1910)는 현대 경제학의 기틀을 마련한 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 경제학 이론을 제시하는 데서 기하학적인 그래프와 방정식을 도입하고 수학적인 증명의 방식을 동원하여 경제학을 일반인들로부터 멀어지게 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방법을 채택하게 된 데는 그럴 만한 필요성이 있었고, 이에 따른 장단점이 있다.

이러한 과학적인 방법론과는 별개로 발라는 나름대로 자신의 “경제표”라고 하는 것을 제시했다. 이에는 그 자신의 기본적인 경제관이 담겨 있다.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하여 소개해 주고자 한다.

경제현상들의 일반적 체계에 관한 구체적 수치 예는 다음과 같다.

인구수: 2500만~3500만

<자본명세>

토지: 800억=소비용 320억+생산용 480억,

인력: 500억=소비용 140억+생산용 360억,

고정자본과 유동자본:

600억=고정자본 400억(소비용 120억, 생산용 280억)+유동자본 200억(소비물품 20억, 소비자 유통 및 저축화폐 20억, 기업가 신자본재 40억, 원재료비축분 40억, 신소득 60억, 기업 화폐 20억),

<소득 명세>

순수익률 2.5%,

연간 토지소득: 20억(순소득),

인적 소득: 50억=순소득 12.5억 + 감가상각과 보험료 37.7억

자본소득: 30억=순소득 15억 + 감가상각과 보험료 15억

르네상스 시대 이후 유럽에서 발달한 계몽철학의 지적 분위기에서 발라가 경제이론의 기초로 삼은 인간관과 토지, 자연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현대 경제학 패러다임에 계승되었는지는 간단히 말할 수 없지만, 현대 경제학 패러다임이 정당한 경제 분석을 통해 이런 위기를 예견하지는 못할망정 낙관적인 성장과 발전의 개념으로 이에 책임이 있다고 할 때 발라의 사상도 이런 각도에서 비판적 검토의 대상으로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

그는 다른 생산요소와 달리 토지는 감가상각과 보험이 필요 없는 자본이라고 보았다. 땅은 대지만이 아니라 그 위에 인공적인 것을 제외한 자연환경 자체를 가리킨다. 이는 여러 토지의 특성이 같지 않다는 것을 발라도 인정한 것에서 볼 때 그의 관점에서도 암묵적으로 인정된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토양의 질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환경 자체의 질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의 질을 유지하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 발라가 살던 당시에는 자연의 힘이 인간의 산업에 비하여 아주 강해서 인위적인 환경질 파괴에 대한 자연의 복원력이 충분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인간이 비용을 들여서 환경의 질을 유지하지 않으면 농업을 포함한 산업활동 자체가 어렵게 되었다.

토지에는 태양 볕이 쪼이고 비와 바람이 영향을 주어서 토지는 늘 생기의 유지에 필요한 양분과 동력을 공급받는다. 그래서 인간이 토지를 과도하게 이용하지 않는다면 영구적으로 토지로부터 혜택을 누릴 수가 있다. 토지를 과도하게 파헤치고 고갈시킨 경우라면, 이후에 상당 기간을 이용함이 없이 방치해 두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토지는 그 기력을 서서히 회복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토지에 감가상각비와 보험료가 인위적으로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발라의 개념을 사용한다면, 그렇게 토지를 방치해 두는 기간 동안 토지는 임대료를 충당할 소출을 내놓지 못하고, 토지 서비스를 스스로가 소비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토지가 지력을 상실하여 감가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물론 토지가 자신의 기능을 복원하는 데 인위적인 자본의 투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토지에 대한 적정한 이용(exploitation)의 정도를 유지하게 되면, 감가상각비와 보험료가 필요하지 않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발라가 그 당시에 오늘날의 유기농이나 생태농업에 해당하는 것을 주장한 일은 없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농업생산기술에서 감가상각비와 보험료에 해당하는 만큼을 농부가 자발적으로 생산을 억제해야 토지가 영구적으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고, 발라의 경제표가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즉 토지 이용자는 토지의 전체 서비스 중에서 순소득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이용하고, 감가상각과 보험의 비용에 해당하는 부분은 잠재적인 서비스로 그냥 두고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만약에 토지에서 추출하는 토지서비스가 지력을 고갈시키는 수준이라면, 토지의 순소득 중에 상당 부분은 감가상각+보험료로 계산이 되어야 타당할 것이다. 이는 예를 들어서 국가가 조세로 징수하여 환경관리비용으로 지출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사실 중농학파는 지주계급이 소비하는 순소득에 일정한 기능이 있다고 보았으며, 이는 맬더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는 발라의 관점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인력의 사용에 대한 대가인 임금에도 인력의 순수한 대여요금에 해당하는 것, 감가상각비, 보험료 등 세 가지가 다 들어간다고 보았다. 그리고 감가상각비와 보험료는 이 경우에 노동자 본인 외의 배우자와 자녀들의 부양비용과 교육비 등이라고 말한다. 그가 수치상의 예를 제시하고 있는 발라의 경제표를 본다면, 이런 노동 임금에서 저축으로 자본형성을 할 가능성은 고려되고 있지 않다. 노동 임금은 전체가 다 소비되는 것이고, 다만 그 소비수단이 세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는 것뿐이다.

노동 임금에 감가상각과 보험료의 요소가 있다고 본 것은 노동력을 재생산해 주는 원천으로서 가족부양의 비용을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발생하는 현상은 전체 노동자 중에 생계의 유지 자체가 불안정한 비정규 노동자들과 파트파임, 임시직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감가상각과 보험료를 고려한다면 노동시장에서 임금에 대한 하한가격제가 필요하게 된다. 발라는 이에 대해 찬성과 반대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국가가 법률에 의해 또는 어떤 특정한 협회들이 협박과 폭력의 절차에 의해 임금의 하한을 정했다면, 일정 수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을 판매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또한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이 노동하거나 더 높은 가격에 더 적게 노동하는 것에서 그들에게 있을 수 있는 장점이나 단점에 관해 아무런 편견을 두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임금 체제에 관해서는 <응용 정치경제학 연구>에서 더 현실적인 고찰을 하고 있다. 순수 정치경제학 체계에서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는 가격은 어디까지나 순소득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발라가 완전한 자유경쟁을 주장한 것은 이 부분에 해당한다. 임금이 일정 수준의 감가상각+보험료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면, 인구는 재생산되지 못하게 된다. 발라는 임금에 수준이 인구의 재생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근로소득세를 논하는 부분에서 명확히 의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임금 부문에서 순소득에 해당하는 것이 어떻게 쓰이는 것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어떤 일터에서는 노동자 자신의 생존을 위한 의식주와 작업환경에 관련된 비용은 임금 이외에 사업체의 경비로 충당될 수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임금의 순소득 부분에는 아무런 하한선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발라의 임금 개념은 인구 문제와도 관련되고 상당한 사회 정책적 고려를 담을 수 있게 설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시카고학파의 인적자본 이론으로 이어지고 고전학파의 문제의식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발라는 생산요소들의 이용가격이 소비용 산물의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보았지만, 그가 말하는 영국학파는 산물의 가격이 생산비용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인적 자본이든 물적 자본이든 그 사용 요금이 감가상각과 보험료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발라의 경우에도 자본 서비스의 요금에 감가상각과 보험료의 요소가 있어서 이는 그 요금의 자연적으로 설정되는 하한선의 기능을 한다. 그렇게 본다면 발라에게서도 생산요소의 비용이 전적으로 산물의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산물의 가격에는 생산요소의 감가상각과 보험료에 의해 설정되는 자연적인 하한선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가치설을 기초로 하는 영국학파는 이 하한선이 장기적으로 산물가격이 수렴해 가는 자연적인 가격이라고 보았지만, 발라는 그런 자연적인 가격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차이점이 있다.

저번 호 보기 http://www.cycleconomy.org/doldari2101.htm  

지난호 모두 보기 www.cycleconomy.org/dolletter.htm

*메일수신을 원하는 분은 sngmoo@cycleconomy.org로 요청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