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통신

제202211호 [통권 제244호]

2022년 9월 2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 연구소

주소: 서울시 송파구 동남로 2길 18. 전화: 070-7767-5510

茶山의 눈으로 상공업 문명을 생각한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 중에 목민심서, 경세유표와 같은 저술을 통해 유학(儒學)의 경전에 제시된 전통적인 세계관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관점을 기초로 이상적인 농경국가의 조직과 제도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유학의 경전이란 것이 서경(書經), 주례(周禮)와 같은 수천 년 전에 나온 책들이라 지금부터 2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너무 심하게 과거 지향적인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제도 자체를 자연법칙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철학적 관점에서는 사회에 적용되고 통용되는 만고불변의 자연법칙을 탐구하는 작업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전거(典據)가 수천년 전의 서적에 있건 지금 시대의 것이건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다산이 살았던 18세기 말 19세기 초의 조선과 달리 상공업 문명의 시대이고, 특히 한반도에서는 생산과 유통, 소비의 양태가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상공업문명이 가져온 결과인 기후 재앙의 위기를 맞고 있으면서 우리의 생존방식을 어떻게 바꾸어야 재앙의 크기를 줄이고 지속가능성이 더 높은 체제를 향해 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시점에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상공업 문명이 조선에 들어오기 이전에, 수천 년간 큰 변화 없이 지속되어 온 농업사회의 세계관을 가진 다산이 공업과 상업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주로 목민심서의 공전(工典)에 관련되는 서술들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중요시하는 것은 산림과 임산자원입니다. 목재가 농경사회의 물건 제작의 원료로서 무엇보다 중요했으니 이는 당연합니다. 그리고 금광, 은광, 철광 등의 광산의 경영은 철저하게 국영으로 해야 한다는 것, 도로, 저수지, 제방, 성(城), 교량 등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토목사업에 국가 행정이 치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기술자들의 물품 제조 활동에서는 탐욕이라고 표현되는 영리 목적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됩니다. 흥미롭게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1941년도에 발표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이란 문서에서도 보면 광산은 국영으로 해야 한다는 조항이 나옵니다. 그 부분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가. 대생산기관의 공구와 수단을 국유로 하고 토지.광산.어업.농림.수리.소택과 수상.유기상.공중의 운내수사업과 은행.전신.교통 등과 대규모의 농.공.상 기업과 성시 공업구역의 공용적 주요 방산은 국유로 하고 소규모 혹 중등기업은 사영으로 함” 북조선의 1946년 20개조 정강에서도 제9조에 “(9) 대기업소, 운수기관, 은행, 광산, 삼림을 국유로 할 것.”이라고 하여 광산의 경영을 국유로 할 것을 정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적 공업활동과 지하자원의 채굴은 현대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부분인데, 이러한 부문에서 민간인들의 영리활동이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정유산업, 가스와 석탄의 공급, 전기의 공급과 같은 기간산업은 국영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국가와 대자본이 이러한 기간산업 분야에서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영리의 추구가 배제되지도 않습니다.

상업과 유통의 부문에서는 다산이 별로 이야기한 바가 없지만, 흥미롭게도 이는 수(水) 자원의 관리와 관련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의 조성과 관리, 유통과 통행을 위한 도로와 교량과 같은 인프라의 건설, 그리고 수운을 위한 하천 관리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뱃길이 통하는 곳과 상인과 나그네가 모여드는 곳에 그 범람하는 것을 소통시키고 제방을 견고하게 하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저수지의 물을 고갈되지 않게 유지하고 고르게 잘 분배하는 일은 주역(周易)의 전거를 인용하여 중요시합니다.

“작은 것을 못과 늪이라 하고, 큰 것을 호택(湖澤)이라 하며, 그 막는 것을 방축 또는 제방이라고 하는데 이는 물을 아끼기 위함이다. 이것이 <주역(周易)>의 수택절(水澤節) 괘의 대상(大象)에서 말하는 택상(澤上)에 물이 있으면 절(節)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호수(湖水)라고 이름하는 것이 겨우 7, 8군데가 있을 뿐이다. 그 나머지는 모두 폭이 좁고 작으며 그나마도 방기풀이 우거져 있고 수리하지 아니하였다. 토호와 귀족들이 수리(水利)를 제 마음대로 하여 자기 전답에만 물대는 것을 엄금해야 한다.”

“절(節)”은 경제의 관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자인 것 같습니다. 당시의 농경사회에서 물의 관리를 이익(利益) 추구의 영리활동과 관련지어 강조한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농작물을 재배하는 데 가장 긴요한 자원이 물이고, 물길을 통해서 다량의 화물운송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음양오행 사상에서 수(水)는 상업, 영리 추구활동과 관련이 깊은 상징기호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물은 공기나 마찬가지로 거의 희소성이 없는 자원으로 인식되고, 산업현장에서나 생활 중에서나 물에 대한 낭비가 심한 것이 옛날과 큰 차이점입니다. 또한 국제무역을 제외하고 국내의 화물유통에서 수운(水運)은 거의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모든 원재료와 에너지, 상품들이 바다를 통해서 들어올 뿐 국내 유통에서는 물길은 더 이상 이용되지 않고, 국내의 수운(水運)의 거점으로 중요했던 서울 서강의 마포, 송파, 강화 같은 곳들은 그런 기능이 없어진 지 오래 되었습니다.

태양의 힘에 의해 계절풍이 불고, 이 바람을 잘 이용하면 동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선박 운항이 가능하기에 전통사회에서는 물길이 유통에 절대적으로 중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물의 중요성에 대하여 공업문명의 문제점을 생각해야 하는 지금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물이 물질을 순환시키는 데 중요한 매개체가 되기도 합니다. 물 자체가 강우(降雨) 시점부터 계속 흘러 내려가고 증발하면서 순환하고 스스로 정화되며, 땅 위의 모든 유기체들이 이에 의존해서 살아가며 순환체계를 이루게 됩니다. 또한 하천의 물길은 지역의 순환적인 경제 단위의 중심을 이룹니다. 서로 물길이 연결되지 않는 지역들은 같은 순환적 경제단위에 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국내 경제를 중심에 두고 해외에서 지하자원과 화석연료를 도입하는 것을 최소화한다는 전제로 미래의 경제를 생각한다면 물만큼 경제활동 전체의 운행에 중요한 자원이 없습니다.

문명의 흥망에서 흙의 관리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반면에 물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물은 지혜롭게 이용하는 데 따라 화석연료의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기후 재앙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점점 더 중요한 쓸모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다산은 농경사회에 살면서 먼 옛날의 책을 읽은 사람이지만 그의 이야기는 쓸모없는 것으로 쳐 버리면 할 수 없지만 귀 기울여 들어보면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주고 있다고 보입니다.

지난호 모두 보기 www.cycleconomy.org/dolletter.htm

*메일수신을 원하는 분은 sngmoo@cycleconomy.org로 요청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