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통신

제202216호 [통권 제249호]

2022년 10월 7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 연구소

주소: 서울시 송파구 동남로 2길 18. 전화: 070-7767-5510

동방의 세계관과 순환경제

주역(周易)이란 고전은 만물과 인생에서의 변화와 순환의 이치를 알고자 한 동아시아인들의 깊은 필요와 관심이 반영된 문서입니다. 불가측한 자연과 사회의 변화 중에 처한 인간이 자신이 처한 위치와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점을 치고 나온 결과를 풀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 힌트가 되는 말들로 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태극기에 그려진 태극과 사괘는 음과 양의 모습 그리고 하늘, 땅, 물과 불을 상징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살아온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상식에 속합니다. 태극기에 등장하는 4괘 외에 또 네 개의 괘가 더 있는데 이는 천둥번개, 바람, 산, 연못 등 네 가지 자연의 모습들을 상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인간의 경외의 대상이 된 여덟 위(位)의 신들이 8괘로 자리잡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괘라는 것은 양효와 음효 합하여 세 개가 순열(順列)을 이루므로 이진법의 세자리수와 같이 8개가 됩니다. 양효 세 개만으로 이루어진 괘는 하늘이고 음효 세 개로 이루어진 괘는 땅이라서 양은 하늘로 상징되고 음은 땅으로 상징됩니다.

그런데 생명체들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은 음(陰), 즉 그늘이지 양(陽), 즉 내리쬐는 햇볕이 아닙니다. 고대인들의 사고에서 만물은 공포스럽고 강력한 힘을 지녀서 생명체에 위험이 되는 동시에 에너지원이 되는 존재들과 많은 생명들을 품어서 살 수 있게 해 주는 많은 틈새를 지닌 존재들로 대별된 것이 아니었나 추측하게 해 줍니다. 이 두 가지 극(極)이 모두 있어야 생명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우리가 자원(資源)이라 부르는 원재료들, 화학에서의 원소(元素)들은 섞임이 없는 순수한 것들이고 많은 에너지를 들여서 가공해야 도달할 수 있는 물질상태라서 그것이 포장된 상태로 제공되면 상품가치가 높고 순수한 상태의 원재료일수록 상품가치가 높습니다. 이용할 수 있는 용도와 수요처가 다양한 것이죠. 그러나 그 순수 원재료 자체는 인간이 그대로 소비를 위해 쓸 수가 없고 인체 건강과 안전에 치명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가공을 거쳐서 다른 매질(媒質)을 통해 농도를 낮추고 다른 성질의 재료들과 혼합해야 비로소 사람이 소비할 수 있는 최종 제품이 됩니다.

자연에서 그대로 내리 쬐는 햇볕, 하늘에서 내려서 땅을 적시는 빗물, 천둥과 번개, 나무를 비롯하여 많은 것을 키워내고 광물을 공급해 주는 험준한 산악 이런 것들은 인간에게 고마운 자연의 보고(寶庫)인 동시에 인간 생존에 위협을 가할 경우도 있어서 경외의 대상으로 신격화되기가 쉬웠습니다. 그런데 산업화 시대 이후에는 대부분의 원재료가 공장에서 많은 인력과 화석연료를 투입하여 설비를 통해 만들어지고 해외무역으로 공급이 되어 자연의 신과도 같은 능력은 점점 인간의 시야에서 사라져 가고 산과 계곡과 강은 중장비를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깎이고 개발이란 미명으로 포장이 됩니다.

이런 시대에 자연의 순환 질서를 생각하게 해 주는 주역과 같은 고전은 경쟁사회에서 밀려나거나 벗어난 한가한 사람들이나 관심을 갖고 찾아보는 책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신들은 산업화와 해외무역으로 높은 성을 쌓은 인간사회의 장벽을 기후재앙으로 허물고 다시 밀려닥치고 있습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자원들 중에 가장 중요한 맑은 공기, 깨끗한 물, 건강한 흙은 공장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커다란 순환을 통해 제공되는 것임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물자를 오남용하면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과학 연구를 거쳐 다시 주역(周易)의 세계관을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순수하고 강인한 것도 중요한 삶의 재료들이지만 틈새와 그늘, 잡다한 것을 품어주는 흙과 같은 터전이 생명의 필수조건이란 관점도 이 책이 노장(老莊)의 도가 사상과 공통적으로 일깨워 주는 부분입니다.

기본적으로 동아시아의 유교와 도교 사상은 그 공통의 경전인 주역(周易)이 말해 주는 것처럼 계절에 따른 삼라만상의 변화와 순환의 질서에 순응하여 겸허하고 소박하게 절제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 질서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고 상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도덕철학을 전개해 왔다고 보입니다. 그 가운데서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악행으로 여겨지는 것이지요. 장자의 소요유나 호접몽에서처럼 시적인 상상의 세계에서는 구만리창공을 날아다니고 인생이란 시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시야를 보여 주지만 그런 사고의 문법 자체가 천지인(天地人) 자연의 대질서를 존중하는 궤도 위에서 성립하기에 자연을 피동적 대상으로 삼는 사고(事故)를 일으키지 않았던 것이죠.

순환경제의 설계가 근대 자연과학의 성과와 방법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생태학과 수리(水利) 과학, 환경공학 그리고 기상과학의 예측방법 등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18, 19세기 근대 과학 패러다임의 생성 시기에 참으로 다양한 세계관과 사고체계를 가진 학자들이 근대 세계를 연 과학 연구들을 내놓았고 그중에서 자본주의 산업사회라는 환경에 적합한 종류가 더 많은 지원을 받아 주된 과학기술 체계로 진화했고 그렇지 않은 종류들은 생각은 훌륭했어도 도서관에 꽂힌 먼지가 쌓인 책들로만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 그중에서 지금 시대에 재발굴해서 계승, 발전시켜야 할 업적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대체로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같은 사람들이 그 시초에 있고, 맑스가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고 하는 기후변화의 농업 생태학을 연구한 Carl Fraas 같은 사람도 Gustav Fechner 같은 물리학자도 그 시대의 추세에 맞지 않아 도태되었지만 깊이 있게 알아볼 과학자들입니다. 또한 그렇게 서양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학자들일수록 동방의 세계관과의 친화성이 발견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근대 경제학을 창시한 아담 스미스는 ‘천문학의 역사’란 책의 저자이기도 한데 그의 국부론은 뉴턴의 천체 역학 체계를 경제 질서를 설명하는 데 적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반균형이론의 대표자인 레옹 발라는 라플라스의 역학체계를 깊이 공부하고 경제학에서 이와 비슷한 여학체계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학 패러다임과 그 원류인 역학 체계의 공통점은 방법론적 개인주의와 데카르트의 이원론입니다. 그래서 이 패러다임의 과학체계에는 처음부터 생명현상이 배제되고 차가운 물질의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데, 경제학이 이런 방법론에 따라 만들어져서 발달해 온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맑스는 철학박사 학위논문에서 원자론을 다루면서 이원론을 극복하고 일원론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 근대경제학의 시조들과는 차이를 보여 줍니다. 그의 유물론과 유물사관은 일원론적인 세계관이고 연구방법론입니다.

순환경제를 설명하고자 하는 순환경제학이 있다면 이는 당연히 일원론적인 관점에 서야 할 것이며, 그런 점에서 동아시아의 우주론과 더 가까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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