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통신

제202220호 [통권 제253호]

2022년 11월 5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 연구소

주소: 서울시 송파구 동남로 2길 18. 전화: 070-7767-5510

사고(Incident)와 참사

누구나 잠깐의 실수로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나도 순간적으로 발을 잘못 디뎌서 어깨뼈가 골절이 되는 낙상 사고를 당해 한 달 이상 불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명의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서 사고를 당하는 것은 순간적인 실수나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인 원인에 의한 사고(accident)로 볼 수가 없고 구조적이고 불가항력적인 피해가기 어려운 원인에 의해 조성된 사태이자 변고(變故)입니다. 생물체로서의 사람은 주변의 위험요인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피할 줄 아는 지각능력과 대응능력을 정상적인 경우에는 갖추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군집인 군중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험한 상황에 집단적으로 마주하게 되면 군중들은 무의식적으로 힘을 합쳐 대응조치를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위험 상황을 주변에 알리고 자구적인 대응행동을 합니다.

이태원 참사의 상황을 보면, 여러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하여 위험을 알렸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내려가는 사람들은 발 디딜 틈 없는 인파 가운데서 나름 조심스럽게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발을 헛디뎌서 중심을 잃고 넘어지더라도 다들 긴장하고 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앞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에 그 압력을 몸으로 견디고 같이 넘어지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의로 힘을 주어 사람들을 밀어붙이는 자들이 있었다면, 거리의 음악소리로 시끄러워서 사람들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다면 밀어닥치며 넘어지는 사람들을 몸으로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져서 바닥에 깔리게 됩니다. 그것은 고의였건 부주의였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함정을 만든 사람들, 환경, 힘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경찰이라는 공권력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사람이 어둡고 험한 밤길을 걸을 때는 온갖 감각을 총동원하여 실족하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러다 혹시 넘어져도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다치지는 않습니다. 그러지 않고 다른 일을 생각하느라 눈과 귀가 건성으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실족하게 될 위험성이 높고 실족하고서 갑자기 반응하지 못하여 크게 다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때 공권력은 어두운 밤길에 행인들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하라고 임무를 부여받은 자들입니다. 그 눈과 귀가 다른 생각에 팔려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면 사람이 무엇을 믿고서 밤길을 나서겠습니까? 눈과 귀가 겉돌았다는 것은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사고가 나도록 이끌어 간 구조적인 강력한 원인이지 않습니까? 그 공권력을 동원하고 지휘하는 명령체계의 상부 기능이 작동하지 못했다면, 이는 적이 침공해 오는 것을 알지 못한 군인들과 마찬가지의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사회 구성원들 각자가 자신에게 맡겨진 사회적 역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는 점입니다. 현대 한국 사회처럼 다수의 인구가 강력한 동력장치들, 에너지 사용 기기들의 포화상태 속에서 생활하는 물리적 환경에서 누구에게나 안전에 유의해야 할 책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물리적 위험과는 별도로 인적인 환경에서 취약한 처지에 몰려서 계속해서 구조 신호를 보내는 이웃들도 있습니다. 이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경찰이나 사회복지요원들의 책무만이 아니며 그런 사람들을 인식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 아니면 사회가 이들의 위험성을 놓치게 될 수 있습니다.

결국은 공직을 맡았든 맡지 않았든, 그들의 이웃이든 이웃이 아니든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 돌아오게 되며, 엉킨 매듭을 풀기 위한 강한 결단이 내려져야 합니다.

공권력을 맡은 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책무가 사람들의 눈과 귀가 되어 생명을 지켜주는 일이라기보다 정권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정부의 위신을 세우는 일이라고 믿는 공직자들은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것은 상식적이지만 의외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실질적인 공권력을 담당한 사직당국, 치안당국, 안보당국의 책임회피와 거짓된 위엄 지키기의 잘못이 지금처럼 일관되게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때가 언제 있었습니까? 그 꼭대기에 있는 책임자는 뭘 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무도 그의 생각을 돌이키지 못하고 그의 질주를 지켜만 보면서 그가 마음을 바꾸기만 고대하고 있습니다. 법치주의자인 그는 법적으로 자신의 일을 합법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상태가 바뀌지 않는다면 법 규정을 빙자한 사회적 역할에서의 책임회피는 사회를 더 큰 혼란에 빠뜨리고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사회 공동체를 파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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