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통신

제202319호 [통권 제279호]

2023년 5월 12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 연구소

주소: 서울시 송파구 동남로 2길 18. 전화: 070-7767-5510

“자본주의”의 정신

자본주의 정신이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유명한 책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들어본 수 있는 개념입니다.

이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저작으로부터 막스 베버가 인용한 문장에 시간이 돈이고, 신용도 돈이고, 돈은 최고로 중요한 것이며, 사람은 신용과 돈을 얻기 위해서 부지런하고, 절제하고, 바른 행실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 있는데, 이런 정신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는 종교개혁 후에 떠오르던 개신교라는 종교의 신도들의 사회적 정신적인 성향과 일치하며, 이로부터 자본주의적 경제발달이 큰 힘을 얻었다는 것이 막스 베버의 주장이었습니다. 다양한 이견과 비판도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발달의 어떤 측면을 보여주는 설명으로 상당히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본주의는 다른 주의들, 예컨대 사회주의, 민주주의, 생태주의 등과 같이 사람들이 신봉하는 이념이라고는 할 수 없고,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부른 것은 자본주의 경제가 발달하던 시대에 자본가들의 정신적인 지향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뿐 이들을 자본이 사회의 중심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의 신봉자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물론 마이클 노박처럼 <민주 자본주의>라는 이념을 신봉하는 사람도 있고 아담 스미스처럼 <자유 시장경제>라는 이념을 주장한 사람도 있지만, 자본 자체가 사회의 주인으로서 사회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은 자본가들의 내심으로는 바라는 바일 수 있지만 이를 공공연한 정치적 주장이나 신념으로 내세우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경제 영역을 넘어선 정치 영역에 대한 권력욕이나 지배욕을 버젓이 이념으로 내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아무리 보수적인 철학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이념으로서의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좌파의 지향을 가진 사람들은 자본을 중심으로 뭉친 사람들에 의해 사회가 운영되는 것을 총체적인 개념의 자본주의 체제로 규정하고 이 자본주의 체제가 거대한 생물체처럼 사람들과 자원을 흡수하여 생존하면서 성장을 꾀해 간다는 이론적인 설명을 하고 이것이 이제는 비인간적이고 인간성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저열화시키는 문제점이 크기 때문에 속히 이와는 다른 경제사회질서로 변혁해야 한다는 생각을 발달시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반(反)자본-주의는 나름대로의 설명과 이론을 갖춘 주장으로서 이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反)자본-주의라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열악한 노동조건과 불안하고 위험한 노동자들의 생존, 생태계 파괴, 도시로의 인구집중으로 인한 주택 문제 등 제반 사회문제, 농촌의 황폐화, 제국주의적 침략과 팽창, 저개발국의 자원수탈, 군비확충과 전쟁, 인종차별, 남녀차별 등 모든 문제를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원리에서 비롯하는 문제들로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차별을 받고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을 규합할 수 있는 통일적인 사상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반면에 우파 또는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대체로 각기 특정 분야에 종사하던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자기가 잘 아는 세부 분야에서 본다면, 좌파에서 총체적인 틀을 가지고서 설명하는 폐해의 원인 분석은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구조적인 입장에서 변혁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려는 가진 좌파의 방향에 동의하지 않고 정확한 분석방법과 정교한 세부적인 대책을 통해 점진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태도를 지니게 됩니다. 물론 자기가 전문적으로 잘 아는 분야를 넘어서는 거시적인 담론에는 끼어들려고 하지 않는 성향을 지닙니다.

따라서 좌파는 총체적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모든 문제들의 근원에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원리를 파고드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세부적인 전문 영역에서 정확한 계산과 관찰과 분석을 하는 데 익숙하지 못한 단점이 있고, 우파는 자신이 종사하는 전문 영역에서 세밀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정교한 해결책을 찾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총체적인 사회체제를 도외시하고 세부적인 분야에 매몰된다는 단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좌파와 우파는 서로 보완적으로 힘을 합쳐서 사회 문제를 풀어가야 사회가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는 교과서적인 이야기이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보는 것은 이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본이 사회의 권력으로서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서의 자본-주의가 자본가들의 내심에만 숨겨진 욕망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말로 포장되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자본의 자유로운 이윤추구라는 이익을 옹호하고 약자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논리로서 내세워지고 있습니다. 환경생태분야, 노동 분야, 국제관계 분야, 장애인, 여성 분야, 주택 분야, 의료 분야, 농업 식량분야 등 모든 분야에서 기득권층과 자본을 옹호하고 약자들을 더 약하게 만드는 방향의 움직임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데, 이는 각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치밀한 계산을 통한 결과가 아니라 좌파의 논리를 꺾고 좌파가 가진 반(反)자본-주의적인 가치를 반대하는 방향에서 전방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좌파 진영에서는 이것을 자본주의 체제가 존립의 위기에 부딪쳐서 이윤창출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생산요소에 해당하는 노동자, 생태환경, 자원을 채취하는 힘이 약한 나라들 그밖의 모든 자본의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억누르고 쥐어짜서 체제가 계속 위기를 넘기려고 하는 것으로 바라봅니다. 이런 설명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점점 더 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보수 정치는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보수 정치 진영은 자신의 특정 분야에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합리적인 진단과 대책을 내놓는 정치를 선호하는데, 자신들과 같은 편에 있다고 생각했던 정권이 이런 전문가들에게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고, 좌파에 반대한다는 일괄적인 방침에 따라 모든 일을 밀어붙이게 되면 전문성과 합리성이란 측면에서 가졌던 장점을 상실하고 보수적 지식인과 정치인으로서의 존재이유를 잃게 됩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어 간다면, 과거에 군사정권의 권위주의 시대에처럼 학생들은 좌파의 체제 변혁적인 가르침에 동조해 가게 될 것이고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은 점점 더 폭력적이고 거칠게 운영되면서 취약해져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反)자본-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정황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극복한 새로운 대안 체제로 나아가려면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이 최선으로 개선된 가운데서도 시대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부족일 때 그런 변화의 동력이 생기는 것이지, 주어진 체제의 장점도 살리지 못하면서 악의와 분노를 가지고서 심술을 부리는 정권 담당자가 있다고 했을 때는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체제의 문제로는 여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좌파 정치 진영에서도 체제의 위기가 다가온 것을 진단하기는 하지만 체제전환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정권의 악폐를 규탄하고 정권 타도를 내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어쩌면 보수와 진보가 힘을 합쳐서 정권을 심판하자는 이야기가 곧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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