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통신

제202328호 [통권 제288호]

2023년 7월 14일 금요일

발행인: 이승무

발행처: 순환경제 연구소

주소: 서울시 송파구 동남로 2길 18. 전화: 070-7767-5510

자본주의 경제는 어떻게 순환의 흐름을 이탈하는가?

맑스 경제학에서는 재생산도식을 가지고 자본주의 경제가 매년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흐름과 구조를 설명하는 방법을 잘 사용합니다. 헨리크 그로스만이 재생산도식을 가지고서 설명한 바에 의하면 자본주의 경제는 특정한 방식으로 확대재생산을 하여 그 생산방식대로라면 순환은 한시적이고 재생산구조가 파탄에 이릅니다.

이와 달리 전근대 농업사회에서 순환의 매개체는 주로 물입니다. 식량생산을 위한 물의 조절은 주역(周易)의 64괘 중 하나인 수택절(水澤節)이라는 괘에서 표현이 됩니다. 절(節)이라는 한자의 의미 자체가 절약하고 절제하고 조절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의 핵심적인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물은 수운(水運)을 통한 물자운반의 경로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는 지금도 해양에서는 해당이 됩니다. 그리고 경제와 문화의 권역 자체가 수원지(水源池)에서부터 물길의 공유 영역으로 형성이 되었습니다. 이 물과 흙이라는 물적인 매개체를 통해서 사람들은 해와 달과 별의 움직임이 제공해 주는 연중의 절기(節氣)에 맞추어 농사일을 반복했습니다. 이 농업사회에서는 물론 작업도구들은 있었지만, 동력으로 움직이는 기계는 사용되지 않고 사람의 노동력과 가축의 힘으로 생산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생산활동에 차질이 없게 일을 맡긴 사람들이 성실하게 일을 잘 하도록 하려면 사람을 대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이 고도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동아시아의 농업사회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윤리적 덕목은 농업사회의 경제 유지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했습니다.

이러한 농업경제에서는 지하자원이라 할 수 있는 석탄, 석유 등의 화석 연료와 금속 재료는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인구 규모는 크게 변동이 없었고, 기상(氣象) 변동에 따라 작황이 달라져서 인구가 증감하는 정도의 변동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유럽에서부터 석탄과 철 및 비철금속이 경제에서 큰 역할을 하는 산업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생산활동이 농업만이 아니라 공업에서 크게 확장되는데, 노동력에 주로 의지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석탄을 이용한 증기력을 이용한 기계적 생산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 중에 기계, 도구 등 생산시설에 들어가는 비용의 비중이 높아지게 되고, 많은 원료를 투입하여 대량생산을 하게 됨에 따라 원료를 구입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의 비중도 높아지게 되는데, 이런 물적 요소를 조달하는 데 드는 비용들을 맑스는 ‘불변자본’이라고 불렀고, 원래부터 중요한 생산요소였던 노동력을 고용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가변자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불변자본’으로 지불하는 것들 중에는 생산시설, 기계장치, 건물, 운반수단과 같은 고정자본에 해당하는 것들과 목재, 철강 같은 원재료나 철사, 철판, 쇠구슬 같은 중간재들로서 유동자본에 해당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불변자본은 다른 업체에서 이런 것들을 구입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인데 한 나라 안에서 최종제품이 생산되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가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각 업체들의 불변자본 성격의 비용들을 합산하게 되면 중복계산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나라를 경제단위로 해서 본다면 최종제품의 총가액을 이루는 요소 중에서 불변자본 부분은 국내의 농업, 광업 등 1차 산업에서 구매하는 원재료 비용과 해외에서 도입되는 원재료와 중간재의 구입비용만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비용에서 차지하는 불변자본의 비중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산시설이 고도화되어 감에 따라 지속적으로 높아집니다. 물론 물적인 생산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더라도 물적 요소들의 구입가격이 낮아져 가면 불변자본의 비율은 높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1차산업에서는 국내이건 해외이건 공업 부문보다 생산시설이 고도화되기가 어렵고 지형적 환경적인 불규칙한 장애요인들과 싸워나가야 하기 때문에 생산과정이 자동화되기보다는 노동력에 의존하는 정도가 일반적으로 더 높습니다. 그래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고 저개발국의 노동자들은 점점 더 높은 생계비를 요하고, 환경적 제약요인들을 극복하는 데 점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되므로 1차 산업으로부터의 원료 조달 가격은 낮아지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생산시설의 고도화에 따라 높아져 가는 불변자본 수준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고용하는 데 들어갈 비용인 가변자본을 축소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그러면 노동력의 투입이 줄어들거나 아니면 경우에 따라서는 노동자들이 생계수준 이하의 임금을 받고 일을 해야 할 형편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노동력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임금 수준이 되지 못하여 인구 자체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잉여가치의 원천인 노동력이 줄어들게 되면서 생산시설의 고도화에 따른 불변자본의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잉여가 점차 줄어드는 것이 되고 자본가들의 소비행위에 들어가는 잉여산물의 수준도 점차 축소되어 가면서 경제는 붕괴 위기에 다가가게 됩니다.

해외로부터의 화석연료 자원과 금속자원의 수입을 일부 대체할 수 있는 플라스틱과 금속의 자원순환 정책은 해외 자원조달 비용을 줄이면서 국내에서 재활용에 들어가는 노동력만큼을 더 고용하는 것이므로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를 어느 정도 늦추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지만 자본주의 경제가 가지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생산요소를 물적 또는 사용가치적 성격에 따라 고정자본, 물적인 유동자본 그리고 노동력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맑스는 사람의 노동력이 기본적으로 가변성(variability)을 지닌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양한 생산활동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변화된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인지 노동력을 고용하는 비용을 가변자본이라고 불렀습니다. 물적인 유동자본은 여러 가지 산업이나 공정에 범용(汎用)으로 들어갈 수 있는 원재료나 중간재를 가리키는데, 금속화폐와 성격이 비슷해서 유동성이 높고, 시장상황이나 기술이 변화한다고 해서 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염려가 없습니다. 문제는 고정자본입니다. 고정자본은 생산시설로서 설치에도 비용이 들고 해체와 폐기에도 비용이 들며, 유지보수가 일상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고정자본은 생산기술의 변화에 따라 그 물리적 수명보다 일찍 해체되어야 할 운명에 처하는 경향을 띱니다. 이 고정자본은 운용 중에는 자연의 순환과정으로부터 엄격하게 격리가 된 상태로 관리가 되어야 하는데 추위와 더위를 피하도록 냉난방을 철저히 해 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유지관리에 투입하는 윤활유 등이 유출되면 환경을 오염시키고 사람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고정자본은 주로 에너지 사용제품에 해당되며 자연과 격리되어야 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성격을 지닙니다. 그 전형적인 예는 최근 인공지능을 구현해 주는 거대한 생산 인프라들 그리고 많은 설치비용, 유지비용, 해체비용이 들어가는 핵 발전시설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극단적 형태의 고정자본이 계속해서 거대한 불변자본의 투입을 요하며 반면에 그 생산효과는 의문시되는데,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국가의 산업정책이 동원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산업혁명 이래 자연의 순환 질서에서 점차 벗어난 사람들의 경제활동이 순환질서나 계절감각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살게 만들고, 국가의 공권력이란 힘을 빌려서 오히려 재생산 구조를 파탄으로 몰고 가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경제를 걱정한다면, 이러한 물적인 특성들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일수록  GDP에서 고정자본 형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데 한국은 32%로서 비슷한 경제수준의 나라들에 비해 그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이는 그만큼 순환의 질서에서 이탈한 것으로 볼 측면도 있으며, 경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가는 데 부하가 큰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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